아이즈 ize 글 신윤영([싱글즈] 피처디렉터)
택시를 꽤 자주 타는 편이다. 직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월간지를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한 달의 대략 절반은 야근 후 새벽에 택시로 귀가하고, 기동력을 위해 거의 모든 취재를 택시를 타고 다니며 한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내 사회생활 경력은 콜택시의 역사와 어울렁더울렁 함께 흘러왔다. 훗, 이런 걸 가리켜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하는 건가.
신입 기자로 첫 야근을 하던 날, 사수 선배가 가장 먼저 가르쳐준 건 기사를 작성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린콜택시 전화번호였다. “이 번호로 전화해서 회사 주소랑 목적지를 말하면 택시가 와.” 콜택시? 왜 굳이 전화해서 부르는 거지?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읽은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밤늦게 택시를 타잖아. 콜택시가 안전해.”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야근 닷새째 알게 됐다. 전화로 택시를 부르는 게 좀 번거로워서 그냥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다. 그 무렵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새벽 2~3시에 다니는 젊은 여자는 십중팔구 ‘술집 아가씨(나 다름없는 헤픈 여자)’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남자가 적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는 걸 그날 알았다. 택시 기사는 자꾸 으슥한 길로 가며 ‘나랑 한번 사귀자’고 추근거렸고, 나는 내릴 때까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날 이후 야근할 땐 반드시 콜택시를 탄다. 그린콜, 친절콜, 나비콜, 해피콜, 한강콜, 모범콜 등을 두루 이용하고 우버와 이지택시를 거쳐 마침내 카카오택시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내가 침소봉대 기능보유자처럼 보인다는 거, 나도 안다. 지난 두 달 남짓 카카오택시를 이용하면서 그 동안 수없이 택시를 타며 누적된 피로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나조차 새삼 실감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얼마 전 서울시가 발표한 ‘택시 해피존’ 정책에 대단히 회의적이다. 택시 합승이 성폭행과 강도 등 흉악범죄의 온상으로 9시 뉴스에 등장하던 게 고작 10년 전의 일이다. “금요일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강남역 일대에서 택시 합승을 허용한다”라고 쓰고 “택시를 타고 혹시 내가 강간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덜덜 떤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헛된 꿈을 꾸었구나”라고 읽으면 되겠다.
글. 신윤영([싱글즈] 피처디렉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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