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수시 접수 한달여 앞두고 사정관제 겨냥 요구 빗발


문구 적어 건네기도…"학기중 정정절차 강화해야"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고교에서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ㄱ 교사는 최근 학부모로부터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록한 종합의견을 수정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 반면 자치활동이나 청소 등 교과 외 활동에는 소홀한 자녀에 대해 ㄱ 교사가 '학교생활에는 소극적이나 성실히 자신의 진로 개척에 힘쓴다'고 기록했는데, '소극적'이라는 표현이 입시에서 감점 요인이 될 수 있으니 고쳐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ㄱ 교사는 "단호하게 거절하기는 했지만 이런 요구가 자주 들어와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2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입학사정관제 등 서류 평가 비중이 높은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학생부의 평가 내용을 수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늘고 있다.

고3 담임인 ㄴ 교사는 학부모가 원하는 대로 학생부를 기록하지 않았다가 항의를 받았다. 한 학부모가 학기 초에 학급 시간표를 꾸민 학생의 활동을 '진로희망사항' 항목에 기재해달라고 요청했는데 ㄴ 교사가 '창의적 체험활동' 항목에 기록하자, 학부모가 이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ㄴ 교사는 "미술로 서울대 특기자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이었는데 진로희망사항에 들어가는 게 더 유리했던 모양"이라며 "'평가는 교사 권한'이라고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9월부터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과 연동된 'NEIS 학부모 서비스'가 시작됨에 따라,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생부 기재 상황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뒤늦게 봉사활동이나 수상경력 등 학생부의 비교과 항목을 추가해달라고 요구하는 학부모도 있다. 경기도 한 고교의 고3 담임인 ㄷ 교사는 "고1 때 봉사활동한 증명서를 갖고 와서 학생부에 기록해달라고 요구하는데 급조한 흔적이 역력했다"며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기록을 안 해줬는데 교장한테 항의를 하는 바람에 나만 곤욕을 치렀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학부모가 '이렇게 기록해달라'고 아예 문구를 적어서 건네주는 경우도 있다"며 "학부모들도 입학사정관제 확대 등으로 학생부가 중요해졌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2월 '학생부 작성 및 관리 지침'을 개정해 한 학년이 종료된 이후에 학생부 내용을 고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했으며, 정정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변경 사항을 기록한 대장을 만드는 등의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그러나 학기 중에 교사가 이미 작성한 학생부 내용을 고치는 것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어, 교사가 학부모의 무리한 요구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동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 성남지회 사무국장은 "학부모들이 한 학년이 끝나면 학생부를 고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미리 수정을 하려고 한다"며 "학기 중 정정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으면, '치맛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학생부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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