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려다 사람 잡는다” vs “패션은 꿈을 파는 산업”



 

 
‘마른 모델 퇴출’ 요구에 패션업계 반발

미국 토크쇼의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가 지난해 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이어트 부작용 때문이다. 윈프리는 무려 40kg가량을 감량해 화제가 됐다.

할리우드 스타인 니콜 리치와 린제이 로한, 케이트 보즈워스 등도 체중감량에 성공해 인기를 모았지만 거식증을 의심받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전 세계 15∼25세 젊은이 중 1∼2%가 식이장애를 앓고 있으며 이 가운데 13∼20%가 숨진다는 연구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

마른 몸을 선호하는 현상은 국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해외에서도 청소년들의 다이어트 열풍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델의 몸무게가 논쟁의 도마 위에 올랐다. 마른 모델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거센 반면 일각에선 패션의 특성을 간과한 주장이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마른 모델 퇴출 움직임

지난달 말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패션협회 대표가 파리에 모였다. 깡마른 모델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다. 마른 모델을 둘러싼 논쟁은 지난해 8월 스페인에서 우루과이 출신의 루이젤 라모스(22)가 굶어 죽은 사건으로 촉발됐다. 이달 초에는 여동생 엘리아나도 거식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해 충격을 줬다.

마드리드 시의회는 루이젤 라모스가 사망한 뒤 체질량지수(BMI) 18 이하 모델의 패션쇼 출연을 금지했다. BMI는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BMI 18.5 미만을 저체중으로 분류한다. BMI 18은 키 178cm에 57kg, 160cm에 46.1kg 정도다. 세계적인 모델 나오미 캠벨과 클라우디아 시퍼 등은 BMI 16∼17가량.

지난해 11월 브라질의 인기모델인 아나 카롤리나 헤스통(21)이 거식증으로 사망하면서 논쟁은 이탈리아와 미국으로 번졌다.

패션 중심지 이탈리아는 지나치게 마른 모델과 16세 미만 모델의 출연을 사실상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예민한 시기의 동년배 청소년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패션협회도 최근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모델의 나이를 제한하고 패션쇼 무대 뒤에 건강식을 마련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구체적인 몸무게에 대한 규정은 뺐다.

○‘예술적 비전을 반영’ vs ‘청소년에 악영향’

많은 전문가들은 패션업계의 마른 모델 선호 현상이 왜곡된 미(美) 의식을 확산시킨 주범이라고 비판한다.

미국 식이장애 전문가인 노스캐롤라이나대 신시아 불릭 교수는 “유전자가 총에 장전돼 있다면 환경은 방아쇠를 당기게 하는 요인”이라며 “민감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패션업계의 잘못된 미의식 때문에 식이장애에 걸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디자이너들은 심미적인 선택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이 일반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디자이너들의 생각은 다르다. 언론이 식이장애라는 사회문제를 패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샤넬의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는 “옷이 몸을 가리는 게 전부라면 중국 공장에 천 조각을 찾으러 가면 된다”며 “부러움을 유발하는 옷을 만드는 게 우리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소니아 리키엘의 아트 디렉터인 나탈리 리키엘도 “패션쇼 무대를 누비는 여성은 디자이너의 예술적인 비전을 반영할 뿐 현실을 말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며 “패션은 꿈을 파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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