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만 쫓아내면 병이 나을거에요…

 

“나는 임서우입니다. 빨간 장화를 아주아주 좋아해요. 마음 속에 나쁜 병균들이 많아서 아주아주 아팠어요.”

여섯 살, 대문 밖이 궁금한 나이. 하지만 서우는 엄마에게 수십 번 졸라대야 겨우 외출 허락을 받는다. 잠깐 나갔다 들어와서도 황톳물로 손발을 씻고 집안 곳곳에 살균제를 뿌려야 한다. 빨간 장화를 신고 나들이를 가고 싶은 서우는 가끔 엄마 몰래 ‘탈출’을 감행하지만, 10분도 안돼 붙잡혀 호된 꾸중을 들어야 한다.



서우는 희귀한 곰팡이균에 감염돼 있다. 이름도 생소한 ‘크립토코쿠스’ 곰팡이가 서너 개의 덩어리를 이뤄 폐와 심장, 기도 주위에 퍼져있다.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악화될 수 있어 바깥출입을 조심해야 한다. 지난해 5월 40도를 넘는 고열로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옮겨진 이후, 서우는 세상을 그리워하는 아이가 됐다.

이 희귀한 곰팡이균은 아직 정확한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주로 비둘기 배설물에서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특히 도시 어린이에게 많이 나타나는 이 곰팡이는 면역력이 약한 환자 몸에 들어가 발병한다. 균이 혈액을 따라 뇌에 침투할 경우 뇌막염이나 뇌염으로 번져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집 앞에 비둘기가 나타나면 서우는 막대기를 들고 나가 땅바닥을 내려친다. "야야, 브라운!" 비둘기에게 '브라운'이란 별명을 지어준 서우는 눈앞에 비둘기만 쫓아내면 자신의 병이 나을 거라 믿는다. 원인을 모르니 정확히 무엇을 피하고 조심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서우 엄마 안순영(38)씨는 “무조건 공기 중에서도 감염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서워서 숨도 못 쉬겠다”며 답답해했다. “그냥 비둘기가 미워요, 진짜.”  



자기 병을 잘 모르는 서우는 언제나 밝고 씩씩하다. 빨간 장화를 신고 기운차게 병원을 오가고, 밤새 서우를 간호하다 몸살이 난 엄마 이마에 찬 수건을 얹어준다. 설거지도 대신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감기 걸린다”며 말려서 하지 못했다. 대신 서우는 “나 중환자실에 갔을 때 엄마 못 봤었잖아. 나 그것도 다 참아냈는데?”라며 불안해하는 엄마를 위로한다.

엄마는 1년 만에 서우를 세상으로 내보냈다. 피아노학원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난해 겨울부터 서우의 몸 상태가 제자리걸음을 보이자 엄마는 곰팡이균과의 '긴 싸움'을 하기로 결심했다. 치료는 끝이 보이지 않는데 언제까지 아이를 가둬둘 수는 없는 일이다. “내년엔 유치원도 보내고,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준비할 욕심도 나요.” 방송 후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천사 같은 서우’를 응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최수현기자 paul@chosun.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