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초과 상태의 불량 부동산을 중개하는 공인중개사는 전단지 등을 전봇대나 벽 등에 붙여 세입자를 유혹한다. 이들의 “보증금 2000여만원은 최우선 변제되기 때문에 아무 걱정 안 해도 됩니다”는 말을 믿으면 보증금마저 떼일 확률이 높다. 사진은 인천시 남구 학익동 인근. [토요판] 뉴스분석,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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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소득이 정체돼 있고 부채는 늘어난 상태여서 주택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열쇠도 가계소득 증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 아파트 단지. 한겨레 자료 사진 |
임차인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지난 10월7일 인천지방법원에서 만난 문 판사는 “많은 임차인들이 소액 보증금에 대한 최우선변제권이 무조건 보장된다고 믿는데, 이는 큰 오해다. 판례상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문 판사가 언급한 ‘판례’란 대법원이 2005년 5월13일에 선고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채무 초과 상태에서 채무자 소유의 유일한 주택에 대하여 임차권을 설정해 준 행위는 채무자의 총재산의 감소를 초래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그 임차권 설정 행위는 취소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대법원이 올해 8월26일에 선고한 판결은 좀 더 구체적이다. 이 판결문에선 부동산이 이미 채무 초과 상태이고, 임대차 계약이 체결되고서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경매 절차가 개시됐으며 임대차보증금 3200만원이 전세 시세인 2억6000여만원에 비해 지나치게 저렴한 점 등이 원고 승소의 이유였다.
이런 판례가 말해주는 것은 한마디로 빚 많은 집에 입주하는 세입자는 소액 보증금마저 떼일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문 판사는 “실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임차인들이 그나마 자신들의 유일한 재산이라며 울고불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원고인 금융기관 역시 예금자의 돈으로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 법원은 법리와 판례에 따라 판결을 할 뿐인데, 난감할 때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문 판사를 만난 10월7일은 공교롭게도 인천지방법원의 민사담당 판사들과 인천지역의 공인중개사협회 간의 간담회가 열린 날이었다. 이날 간담회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소액 임차보증금은 무조건 보장된다’는 것이 법에 대한 오해이며 이를 대중에게 알려 향후 피해자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10월20일 오전 문제의 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가 위치한 동네는 인천항과 가까웠고, 북쪽으로는 청라새도시와 검단새도시, 북서쪽으론 영종국제도시, 남쪽으론 송도새도시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파트 인근 부동산의 한 직원은 “세입자가 돌아가신 그 집은 지난해 매물로 나온 적이 있다. 한두달 지나 다시 집주인에게 여전히 계약을 할 거냐고 문의했더니 세입자를 구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융자가 많은 집이었는데 어떻게 세입자를 구했는지 좀 의아한 생각이 들긴 했다”고 말했다. 그 직원은 “그 집은 전망이 좋아 같은 면적의 아파트 중에서도 괜찮은 가격에 거래되던 축에 속했다”고 덧붙였다. 시세는 2억1000만~2억2000만원대라고 했다. 국내에서 주택가격을 조회할 수 있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케이비(KB) 부동산시세’ 웹페이지를 통해 이 아파트의 가격을 시기별로 조회했다. 매맷값은 케이비 부동산시세(9월 기준)가 2억1250만원, 국토교통부 실거래가(10월 기준)는 2억500만원이었다. 전세보증금은 케이비 부동산시세가 1억2500만원,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로 1억4500만원이었다. 두 수치의 차이가 있지만, 둘 다 박씨가 낸 전세보증금 2500만원과는 큰 격차가 있다.
인천에 유독 배당이의 소송이 많은 이유
이 아파트 역시 한때는 가격이 상당히 올랐던 곳이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는 “이 동네는 인근 새도시들에 비해 거품이 심하진 않았지만, 집값이 올랐을 때는 그 아파트를 기준으로 2억5000만~2억6000만원까지 갔다”고 말했다. 특히 2006년 10월 1억6000만원에 아파트를 매입한 정씨는 고점과 저점을 모두 경험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의하면 2008년 3분기 집값이 2억5800만원까지 올라갔고, 경매가 개시됐던 지난해 6월엔 1억8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주변 새도시들은 가격 변동폭이 더 컸다. 송도새도시 설립 초기 분양된 송도풍림아이원 1단지는 84.7㎡(25.7평)의 집값이 2006년 1분기 2억7000만원에서 2008년 2분기 5억3000만원까지 올라 고점을 찍은 뒤 현재 다시 3억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값이 거의 두배 가까이 됐다가 다시 절반이 된 셈이다.
따지고 보면 손씨의 비극적인 죽음도 부동산 가격 거품과 관련이 깊다. 전 집주인인 정씨가 올라간 집값에 맞춰 최대한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정씨는 2007년부터 1년간 대출금액이 꾸준히 늘어난다. 그 이후엔 집값도 정체를 보이면서 대출금액도 엇비슷하게 유지된다. 2010년 이후 집값이 떨어지면서 대출금도 줄어든다. 2013년 이후엔 결국 이자도 내지 못하면서 아파트는 경매 절차를 밟는다. 즉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하우스푸어, 깡통주택이 양산되고, 세입자는 렌트푸어로 됐다가 결국 보증금을 떼인 것이다.
인천지역이 국내 다른 도시들에 비해 소액 임차인을 상대로 한 배당이의 소송이 잦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지방법원이 전체 민사소송 건수가 비슷한 수원지방법원, 부산지방법원 등과 비교해본 결과, 배당이의 소송이 수원에선 2012년 173건, 2013년 221건, 2014년 1~7월 116건이었고, 부산지방법원은 2012년 142건, 2013년 142건, 2014년 1~7월 76건에 그쳤다. 인천지방법원과는 대여섯배 차이 나는 수치다.
이유가 무엇일까. 부동산업자들과 배당이의 소송을 다루는 법조인들의 견해를 모으면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인천지역에 가격이 제대로 산정되지 않는 영세한 다가구주택이 많고, 둘째는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이후 인천지역엔 집값이 반등세 없이 지속적인 내림세를 보여왔고, 셋째는 노동자, 외국인, 학생 등 외지인이 많아 값싼 단독가구의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인천에선 송도새도시, 영종 국제도시, 청라새도시, 검단새도시, 아시안게임 유치, 유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 등이 지난 10여년간 단골 호재로 등장하며 부동산 시장의 등락을 이끌었다.
하지만 인천지역에 배당이의 소송이 잦은 더 중요한 이유는 빚이 많은 집을 세입자에게 연결해주는 공인중개사 업자들의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배당이의 소송을 맡아 채권자인 금융기관을 대리한 경험이 많은 임호현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배당이의 소송을 수십건 진행했지만, 중개업자들은 특정인 몇명만이 반복해 등장했다. 한 중개업자는 스무 건이 넘는 소송에서 이름을 발견했다. 이런 중개업자들은 세입자들에게 ‘전세보증금은 법적으로 최우선 변제를 받는다’고 속이고, 한 푼이라도 아쉬운 집주인에겐 목돈을 마련해주겠다고 접근해 수백만원의 수수료를 떼간다”고 말했다.
박상병 인천공인중개사협회 남구지회장은 “인천 중구나 남구 주택가에서 전봇대 등에 붙은 ‘싼 전월세’ 전단지가 대부분 융자가 많은 깡통주택을 중개하는 광고다. 이런 중개업자들은 협회에 소속되지 않아 통제가 어렵다. 물론 일부 중개업자들의 잘못도 있지만, 은행이 대출심사를 잘못한 원죄도 크다”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다음 회에서는 깡통주택으로 이득을 챙기려는 세력들이 벌이는 부동산 복마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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