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아키오 도요타 자동차 사장은 미국 연방하원 청문회에 나와 가속페달 결함을 인정하고 미국 소비자들에게 총 12억달러(약 1조4000억원) 보상을 약속했다. 세계 각국에서 팔린 1000만대에 대한 리콜도 단행했다. 당시 세계 1위(판매량 기준)이던 도요타는 연산(年産) 1000만대(936만대) 생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원가(原價) 절감을 위한 무리한 성과주의 탓에 부품 결함을 방조하다가 리콜 사태를 맞았다.
지난달 발생한 폴크스바겐(VW) 사태는 '제2의 도요타' 사태로 불린다. 세계 1위로서 연산 1000만대를 앞두고 대규모 리콜로 주저앉았다는 유사점에서다. VW은 올 상반기 504만대를 팔아 도요타를 2만대 차이로 누르고 세계 1위에 등극한 지 두 달 만에 1937년 창사 이후 78년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1929년 이후 78년간 1위이던 미국 GM도 937만대 생산(2007년)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는 등 글로벌 3강(强)이 모두 1000만대 문턱에서 주저앉은 것을 가리켜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는 '1등의 저주' '1000만대의 징크스'라는 분석이 나온다.
◇"北韓 같은 VW 이사회"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최근 VW의 기업 구조를 '북한'에 비유했다. "창업자 가문이 3대(代)째 경영을 주도하는 VW 내부의 폐쇄적인 경영 결정 방식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구조"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VW 감독이사회의 19명 멤버 중 3명만 외부인이다. 또 VW 감독이사회 의결권의 50.7%를 대주주가 장악하고 있다 보니 건설적인 비판이나 외부 시각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감독이사회란 독일 기업 특유의 조직으로, 경영진을 감독하는 이사회 같은 기구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VW 사태는 감독이사회 회의실에서 시작됐다"고 최근 진단했다. 감독이사회를 20년 넘게 주무른 사람은 올 4월에 퇴출당한 창업자의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였다. 그는 자신의 네 번째 부인을 감독이사회 이사로 선임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 그런 피에히를 축출한 것은 창업자의 친손자인 볼프강 포르셰 현 감독이사회 의장이며, 그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태한 빈터코른 전 CEO의 후견인이었다.
VW은 또 차량 조립부터 부품까지도 모두 직접 관여하는 수직계열화를 강력 추구하며 톱 다운(top-down)식 상명하달(上命下達) 명령 체계로 유명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VW 이사회에 권력투쟁과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난무하는 데다 가족과 측근 중심으로 움직여 선진 기업다운 견제가 작동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1등의 저주'…" 1000만대 징크스
2007년 취임한 빈터코른 전 CEO는 "도요타를 넘어서겠다"며 2018년까지 연산 1000만대 달성 목표를 내걸었다. 이를 위해 VW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미국 시장 공략이 관건이란 판단 아래 '디젤 차량'에 승부를 걸었다. VW은 중국과 유럽 시장에서 강했지만 미국에서 일본차 점유율을 뺏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유럽보다 규제 기준이 2배 정도 까다로운 미국 디젤 시장을 뚫으려면 '환경 친화적' 엔진이 필요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독재적인 경영진으로부터 해결책을 못 만든다는 질책이 두려웠던 엔지니어들이 좋은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사기(詐欺) 조작을 자행한 셈"이라고 말했다. 안드레 스파이서 런던시립대 교수는 "자리 보존과 고액 연봉을 위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을 약속하는 CEO들이 직접 속임수에 가담하지 않은 채 중하급 경영자와 엔지니어들에게 무언(無言)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경보 마비…정부와 과도한 밀착도
VW 사태 발생 전에 부품업체 보쉬의 경고(2007년), VW 내부 기술자의 조작 고발 등의 수차례 사전(事前) 조기 경보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오랫동안 잠복된 것은 VW을 감독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VW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던 탓이 크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VW 그룹 감독이사회 위원 출신이며 VW의 지분 20%를 갖고 있는 니더작센주(州)의 주지사 출신이다. 슈뢰더 전 총리, 불프 전 대통령도 VW 감독이사회 출신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VW 사태는 특정산업, 특정기업의 비중이 과도하게 커졌을 때 이를 정부나 지역 사회가 제대로 규제하고 감독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던진다”고 말했다.
VW 사태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 경쟁 구도는 가열될 전망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산업 전체에서 규제 강화와 친환경차의 개발을 둘러싼 혁신 경쟁이 불붙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연구개발비 증액 등을 위해 기업 간 출혈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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