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 공중에 떠있다?



지난 22일 서울 충무로 1가 52-5 신세계백화점 구관(舊館) 지하공사장.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도 공사장에는 냉기가 돌았다. 전등 빛으로 실내를 밝힌 공간에는 기둥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둥은 모두 75개였다.

원래 지하 1층·지상 5층이었던 신세계백화점 구관은 지금 이 75개의 기둥에 의지한 채 공중에 떠있다. 신세계는 구관의 지하 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옛날 지하 바닥에서 2.3m를 더 파내려 갔고, 지금은 4.65m(기존 2.35m+2.3m) 만큼 건물을 띄운 상태에서 공사를 하고 있다.

신세계는 올해로 76년을 맞이한 구관의 외관을 훼손하지 않고 리모델링(Remodeling)하기 위해 이처럼 모험적인 공법을 시도한 것이다.



건물을 허물지 않고 리모델링

신세계는 작년 8월 신세계백화점 구관 바로 옆에 본관을 오픈하면서 구관에 대한 리모델링에 착수했다. 박주성 상무는 “서울시와 중구청에서 구관에 대한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아 건물을 훼손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보존개발지구이기 때문에 외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층고(層高)를 높이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밝혔다.

신세계는 새로운 공법을 찾던 중 오래된 건물이 많은 일본과 러시아에서 해답을 찾았다. 기존 건물에 마이크로 파일을 박아 공중에 띄운 상태에서 리모델링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신세계건설의 권용주 상무는 “오사카 중앙공회당은 1918년 준공된 건물로 1999년 보수를 하면서 마이크로 파일을 박는 공법으로 증축했고, 러시아의 볼쇼이 극장도 2001년 보수를 마쳤는데 역시 같은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공법

신세계는 구관 건물을 떠받치고 있던 75개 기둥 아래에 각각 ‘마이크로 파일’을 4개씩 박은 뒤 2.3m를 더 파고 들었다. 마이크로 파일(강관)의 전체 직경은 165㎜로, 가운데는 철심인 65㎜ 강봉(鋼棒)을 넣고 나머지를 시멘트 등으로 채웠다.

구관 건물 전체를 받치기 위해 모두 300개의 마이크로 파일이 들어갔고, 파일 한 개가 약 70t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이 마이크로 파일로 만든 기둥들이 구관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권용주 상무는 “안전에 대한 신경을 몇 배 더 써야 하기 때문에, 보통 공사의 경우 1주일에 1~2차례 하는 계측(計測) 관리를 24시간 내내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혹시 일부 기둥에 갑자기 과도한 무게가 실려 벌어질지 모를 위험한 상황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다.

권 상무는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오히려 돈이 적게 들고 기간도 짧기 때문에 국내 건설공사에선 마이크로 파일을 이용한 증축 사례가 거의 없었다”면서 “이렇게 하다 보니 구관 공사비도 배가 더 들었다”고 말했다.

쌍용건설의 장동운 차장도 “이런 공법은 공사비도 많이 들고 증축도 힘들어 한국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옛 건물이 많은 일본의 경우, 대부분 이 공법으로 기존 건물을 보존한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구관 공사는 2007년 12월 마칠 예정이다.

신세계백화점은 기념비적 건물

신세계가 이만큼 구관에 신경을 쓰는 것은 국내 유통사(史)에서 기념비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구관은 1930년 일본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으로 처음 오픈했다. 한국 최초의 백화점인 셈이다.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은 해방 이후 동화백화점으로 바뀌었다가, 삼성이 1963년 동방생명을 인수하면서 당시 동방생명의 소유였던 동화백화점도 함께 삼성에 넘어갔다.

97년에는 계열 분리가 되면서 신세계백화점은 신세계그룹에 남게 됐다.

(손정미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jms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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