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가기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⑦ 지난해 우리나라는 세금이 무려 11조 원이나 모자라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빚을 내지 않고는 당장 쓸 돈조차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이처럼 나라의 곳간이 텅 비는 바람에 정부가 돈을 제 때 쓰지 못해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4%까지 추락하였다. 당장 세수에 목마른 정부가 투명지갑인 월급쟁이들의 연말정산까지 손을 댔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특히 자녀가 많을수록 세금 부담이 더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조세정책이 정부의 최대 역점사업인 출산장려정책에 완전히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서민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담뱃세까지 대폭 인상해 담뱃값의 4분의 3이 세금이 될 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서민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늘려온 정부가 부유층의 상속세 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세법 개정안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처럼 세수 부족이 극도로 심각하여 서민들의 호주머니 돈까지 털어야 하는 상황에서 부유층에게 상속세를 공제해 주면 결국 그 부담은 다시 수많은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부자의 세금을 깎아준 만큼 누군가는 세금을 더 내야한다 정부가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불리는 연말정산 사태를 일으키게 된 세법 개정안을 만든 것은 2013년이었다. 그런데 이 때 정부는 부유층의 상속세 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이 세법개정안에 함께 포함시켰다. 매출이 3천억 원 이하인 기업을 상속받을 때 무려 5백억 원까지 상속세를 공제해 주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8%가 매출액이 3천억 원을 넘지 않기 때문에, 몇몇 재벌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업이 상속세를 공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게다가 이 제도에 의하면 30억 원을 상속받은 개인은 수억 원대의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가업을 갖고 있는 부유층의 자녀는 500억 원을 상속받아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조세 역전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조세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그런데도 정부의 기업 상속세 공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사상 최악의 세수 결손 속에서도 정부는 상속세 공제 대상과 금액을 더욱 확대하려고 시도하였다. 가업 상속 공제 대상을 매출 3천억 원에서 5천억 원으로 확대하고 공제 한도도 1천억 원으로 확대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우리나라 기업의 99.9%가 상속세 감면 대상에 들어가게 되어 사실상 기업 승계에 대한 상속세가 무력화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구나 기업인 자녀 한 명에게 돌아가는 상속세 공제 혜택이 최고 400억 원을 넘을 정도로 부유층 개인에게 엄청난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제도였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지나친 부자감세라는 공감대가 커지면서 결국 부결되었다. 이렇게 이미 한 번 국회에서 부결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2일에는 청와대까지 직접 나서 ‘가업 상속 공제’를 재추진하라고 촉구하였다. 세수가 바닥이 난 비상 상황에서 이렇게 기업가들의 상속세를 공제해 주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상속세를 공제해 줘야 기업 오너의 자녀가 기업을 물려받아 계속 경영할 수 있고, 그렇게 혜택을 받은 기업 오너의 자녀가 기업을 더 발전시켜 고용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정부의 주장대로 일부 부유층의 상속세 공제에 따른 ‘세수 부족의 심화’와 ‘사회 정의의 훼손’, ‘조세 형평성의 붕괴’, 그리고 ‘소외 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사회적 손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회적 이득을 가져온다면,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주장과는 반대로 가업 상속에 대한 특혜성 상속세 공제는 오히려 시장의 기능을 마비시켜 경제의 비효율성을 키우는 역효과가 만만치 않다. 오너의 자녀가 기업을 물려받아야만 경제가 좋아진다?
그래서 독일 헌법재판소는 기업 상속 공제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지난 2일 청와대는 가업상속 공제의 재논의를 촉구하면서 우리나라의 가업상속공제가 ‘독일’에 비해 까다롭다고 강조하였다. 과연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일까? 2009년 독일도 가업을 상속할 때 상속세를 감면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도입과 동시에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부모가 기업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공제해주는 것은 독일 조세제도의 형평성을 심각하게 위배한다는 지적이었다. 더구나 기업 경영권이 왕권처럼 세습되면 경쟁의 원칙이 훼손되어 시장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계속되었다. 결국 2014년 12월 16일 독일의 헌법재판소는 가업 상속 감면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Unconstitutional)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내년까지 공제 대상이나 규모를 크게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기업 상속 공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사실은 비단 독일 언론뿐만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등 미국과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런데 이미 헌법불합치 판정이 난 지 보름이나 지난 1월 2일, 우리 청와대는 ‘독일처럼’ 상속세 공제 대상을 완화하자고 촉구한 것이다. 만일 청와대가 헌법불합치 판결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라면 너무나 충격적인 무지(無知)였다. 노력이 차이를 만들지 못하는 나라에선 혁신이 있을 수 없다 독일의 조세체계는 근본적으로 우리와 큰 차이가 난다. 독일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소득세 실효 세율이 훨씬 높다. 또한 돈을 굴려서 돈을 버는 데 대해 부과하는 자본 이득세도 우리나라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상속세가 아니더라도 이미 다른 세금으로 부유층에게 많은 세금을 걷고 있다. 또한 독일 기업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일·학습 병행제를 하는 학생들에게 수천만 원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사회적 기능까지 하고 있다. 그런 독일조차도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기업 상속 공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것에 주목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결국 공정한 경쟁 시스템에 있다. 아무리 무능력해도 부모 잘 만난 덕에 세금 한 푼 안 내고 부모의 부(富)를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다면, 누가 치열하게 노력하며 발전을 도모하겠는가?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물려받은 부를 따라갈 수조차 없는 경제구조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 의욕이 감퇴될 수밖에 없고, 새로운 혁신이 나오기도 불가능에 가깝다. 독일에서는 부유층에게 과도한 특혜를 줬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기업 상속 공제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둔갑한 것인지 의문이다. * 다음 편에서는 ‘다른 나라가 상속세를 폐지했다는 것은 진실인가?’ ‘한국에서는 정말 부자가 다른 나라보다 과도한 세금 부담을 지고 있는가?’ 등의 내용을 담은 「한국 세금의 오해와 진실」 을 다룰 예정입니다. ※ ‘Unconstitutional’의 사전적 번역은 ‘위헌’이지만, 우리 법 체계상 ‘헌법불합치’에 해당한다는 관계 부처의 설명이 있어, 본 기사 내용 중 ‘위헌’을 ‘헌법불합치’로 바꿉니다. ☞ 바로가기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뉴스 및 정보 > 역량☆개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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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 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