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퇴임한 전직 대통령 한 분이 일본 총리와 마주 선 장면이 기억난다. 필자는 두 사람의 바지 길이 때문에 TV 뉴스에 귀 기울일 수 없었다. 우리 대통령이 광화문 일대를 걸레질하듯 쓸고 다니는 길게 끌리는 '아저씨' 바지를 그대로 입고 국제 무대에 뛰어드신 것. 함께 선 일본 총리가 다소곳이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당당해 보였던 건, 어깨부터 이어지는 양복의 깔끔한 라인이 바지 끝까지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핫바지'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점심 시간 양복을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는 직장인들이 많은 거리로 나가보시라. '오빠'와 '아저씨'의 바짓단이 어디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키높이 깔창을 집에 두고 오셨나' 의아하게 바라보게 되는 아저씨의 긴 바짓단은 주글주글 주름이 밑단에 잡혀 있다. 그야말로 당신을 핫바지로 보이게 만든다.

 

반면 오빠의 바지는 허리춤부터 바지 끝까지 매끈하고 날씬하게 떨어진다. 무턱대고 바지를 짧게 입는 게 답은 아니지만 바지의 통 넓이와 관계없이, 이상적 바지 길이는 앞쪽은 구두의 발등에 바지 끝이 살짝 닿고 뒤쪽은 구두굽이 충분히 보이는 정도가 적당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지 뒷단은 구두굽에서 2~3㎝ 정도 떨어져 있고, 앞단은 발등을 중간쯤 스치는 정도가 이상적이다. 물론 개인 취향에 따라서 조금씩의 편차가 있을 수는 있다.

해외의 멋쟁이들은 복숭아뼈를 살짝 덮어 구두가 다 드러날 정도로 짧은 바지를 선호하기도 한다. 청바지나 면바지를 입을 경우 운동화나 캐주얼 슈즈가 전부 드러날 정도로 바지 기장이 짧아도 괜찮다.

아무래도 어색하다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아들에게 물려줄 계획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보고 있는 신문 지면을 오려서 옷가게 점원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요구해보시라. "조금 짧은 듯 기장을 맞춰주세요. 난 핫바지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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