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사춘기’ 탈출구가 없다.


#1 한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장지영(36)씨는 지난 2월 연봉협상을 마친 뒤 일주일간 태업을 했다. 경력과 업무량이 비슷한 내근직에 비해 연봉이 낮다고 따졌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료와의 관계가 서먹해졌고 회식 참석도 뜸해졌다. 장씨는 “의욕이 떨어져 이직을 생각했지만 결심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2 전자업체 연구소 부장인 이아무개(45)씨는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부하 직원과 가벼운 입씨름을 했다. 평소 충성심이 강하고 과묵했던 직원이 자신의 일처리 방식을 강하게 비난했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는데, 이 직원은 일주일 뒤 경쟁업체로 옮기게 됐다며 사직서를 들고 왔다.

 

98.5%가 무기력·출근기피 등 경험
대부분 불투명한 비전·처우 불만탓
“기업들 성과에만 집착 후진적 관리”

 

대다수 직장인들이 업무 및 처우에 대한 불만과 앞날에 대한 걱정을 떠안고 살지만, 이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과 관리는 초보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온라인 취업업체 잡코리아가 최근 직장인 804명한테 물었더니, 조사대상의 98.5%가 앞날에 대한 걱정과 직장에 대한 불만으로 슬럼프에 빠지는 이른바 ‘직장 사춘기 증후군’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인 증상(복수응답)으로는, 무기력감(70.8%), 출근기피(58.3%), 신경과민(47.3%), 이직·창업 고려(44.3%), 삶에 대한 회의(41.3%) 등을 꼽았다.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비전(60.6%), 낮은 연봉·처우(60.2%), 과도한 업무량(40.5%), 회사에서의 존재감 저하(39.0%), 성과에 대한 불만족(37.1%) 등을 들었다.

 

천성현 엘지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 기업들은 직원 만족도를 끌어 올리려고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드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성과에 집착한 인력 관리에 머물고 있다”며 “구성원의 불만과 불안을 방치하면 인력 이탈로 이어지고 업무 생산성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갈수록 심리적·문화적 요인이 커지는데, 기업들의 대응은 금전적 보상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올 초 현대경제연구원이 직장을 옮기는 주된 이유를 조사했더니, 경력개발 기회 부족(35.8%)이 연봉 불만(21.1%)과 고용 불안(3.2%)보다 훨씬 많았다.

 

한 대기업 직원상담실에서 일하는 이아무개 대리는 “상담 사유 대부분이 업무 의욕 저하와 스트레스 등 일종의 슬럼프를 겪고 있는 경우”라며 “개별 직원들의 슬럼프 관리는 인사 담당 부서에서 하지 않고 각 팀의 리더들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만족’이 인력 이탈을 막고 기업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천 연구위원은 “경쟁사의 구직 공고, 동료의 이직, 업무량의 급격한 증가 등이 이직을 결심하게 만드는 ‘방아쇠’ 구실을 한다”며 “기업들이 이런 환경 요인에 대한 ‘체크 리스트’를 만드는 등 인력 이탈을 예측·예방할 수 있는 일상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회승 임주환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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