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6월 1일 오후 지하철 3호선 도곡역 주변. 강남 대표 주상복합단지인 타워팰리스를 비롯해 도곡래미안, 대치 우성아파트 등 강남 대표 아파트단지들이 밀집해 있다. 모두들 한때 집값 상승세를 이끌던 인기 아파트지만 부동산 한파를 피하진 못했다. 타워팰리스 주변 중개업소에는 급매물이 수두룩하다. A공인 관계자는 "타워팰리스1차 112㎡(35평)의 경우 12억원, 2차 152㎡(46평)는 12억5000만원짜리 급매물까지 나와 있다"며 "수요자들은 더 낮은 급급매물만 원할 뿐 실제 거래는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 강남 대표 주상복합단지인 도곡동 타워팰리스.

서울의 대표 주상복합단지로 불리는 타워팰리스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매경이코노미가 2006년부터 최근까지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신고자료를 분석한 결과 집값이 고점 대비 30% 이상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타워팰리스 1차 183㎡(전용면적 138㎡)의 경우 2006년 1월 18억6000만원에 거래됐고 3월에는 19억8800만원까지 치솟는 등 20억원에 육박했다. 급기야 그해 10월에는 22억8000만원, 11월에는 23억원에 거래된 물건까지 등장했다. 그러다 이듬해인 2007년 11월에 18억9500만원으로 매매가가 잠깐 떨어지나 싶더니 2008년 4월에는 22억원 거래 사례가 나오는 등 타워팰리스 집값 상승세는 쭉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타워팰리스 불패신화는 한풀 꺾였다. 한동안 거래가 없다 지난해 4월 16억원에 거래되는 등 무려 6억원 이상 떨어진 급매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강남 불패신화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또다시 19억7000만원까지 가격이 치솟더니 7월에는 20억2500만원에 거래된 물건까지 나왔다. 분위기로 보면 2006년 고점 가격까지 회복하나 싶었다. 하지만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17억원 급매물 한 건이 팔려나갔고 올 들어 3월까지 실거래가 신고는 전무했다. 정리해보면 타워팰리스 1단지 183㎡ 매물은 18억원에서 22억원까지 가격이 치솟다가 5억원 이상 하락해 16억~17억원까지 떨어진 셈이다. 거래는 많지 않지만 급매물이 넘쳐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83㎡(55평) 매매가 22억원에서 17억원까지 추락

울 강남구 도곡동에 마천루처럼 들어선 타워팰리스는 주상복합아파트의 상징이었다. 국내 고급주택시장은 원래 일반 단독주택, 아파트가 주를 이루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주상복합아파트들이 그 자리 한켠을 차지했다. 지상 저층부에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한 건물 안에서 헬스장, 골프연습장 등 다양한 시설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원스톱 서비스'가 부유층들에게 어필했다는 얘기다.

특히 주상복합아파트는 철골구조의 타워형으로 30층 이상 고층 건물이 주를 이뤘다. 현대건설이 2003년 완공한 69층짜리 목동 하이페리온I(256m)은 여의도 63빌딩을 제치고 한국 최고층 건물로 등극했다. 그러다 이듬해인 2004년 삼성물산 타워팰리스(69층, 261m)가 건설되면서 1위 자리는 다시 바뀌었다. 초고층 기록만 세운 건 아니다. 주상복합아파트는 초기에 1, 2동짜리로 많이 개발됐지만 2000년 이후에는 대규모 단지를 형성했다. 2590가구인 타워팰리스 외에도 최근 분양한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는 지상 51~59층 8개동, 2700가구에 달했다. 물론 타워팰리스가 처음부터 잘나갔던 건 아니다. 한때 미분양 사태를 빚었고 2002년 말 입주를 시작했음에도 빈집은 수두룩했다. 그러다 결국 분양가의 몇 배에 달하는 웃돈이 붙으면서 미운오리새끼가 백조로 둔갑했다. 어쩔 수 없이 입주했던 삼성그룹 임원들도 돈방석에 앉았다.



그런데 언제까지 최고 집값을 수성할 것처럼 보였던 타워팰리스 집값이 요즘 주춤하다. 이유는 뭘까. 일단 수요 자체가 줄었다. 부자들은 당연히 타워팰리스를 선호할 것이란 편견은 옛날 얘기가 됐다. 타워팰리스 초기 입주자 중 상당수는 청약 열풍을 불러온 고급 임대아파트 한남더힐이나 반포자이, 반포래미안 등 강남, 용산 신규 아파트나 고가 타운하우스 등으로 빠져나가고 월급 생활자들이 이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 타워팰리스가 더 이상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매력을 이어가긴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타워팰리스 집값은 한동안 더 떨어질까. 전문가들은 타워팰리스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주택시장이 위축돼 있는 데다 고가 주상복합아파트의 선호도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급매 물량이 많진 않지만 가장 큰 문제는 거래가 없다는 것. 올 1분기 타워팰리스 1단지는 단 6건 거래되는 데 그쳤다. 양해근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수요층이 강남권에 한정돼 있는 것도 최대 약점"이라며 "연말, 내년 초까지는 계속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매수자 우위 시장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의 호가 차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크게 벌어질 것이란 얘기다. 가격 하락폭도 일반, 재건축아파트보다 클 것이란 우려가 많다. 현재 타워팰리스 주상복합아파트 가격은 3.3㎡당 4000만원 전후인데, 한남더힐, 반포자이 외에 또 다른 경쟁자가 생긴다면 집값 하락은 좀 더 이어질 전망이다. 한태욱 대신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실거주자 비중이 높은 타워팰리스는 급락하기보다는 점진적인 하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하락폭은 일반 아파트나 재건축아파트보다는 상대적으로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팰리스 외에도 주상복합단지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경매시장에서 더 그렇다. 부동산경매 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낮아지는 가운데 주상복합이 일반 아파트보다 두드러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올 3월 기준 최근 6개월간 수도권 일반 아파트는 감정가의 평균 84.9% 가격에 주인을 찾았으나 주상복합은 78.3%에 낙찰됐다. 일반 아파트 낙찰가율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제2금융권으로 확대된 지난해 10월 이후에도 80%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주상복합아파트는 지난해 12월 83.4% 이후 올 들어서는 줄곧 70%대에 머물고 있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주상복합인 롯데캐슬골드 전용 166.7㎡는 감정가가 24억원이었으나 세 번의 경매 유찰 끝에 지난 2월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감정가의 60.5%인 14억5230만원에 낙찰됐다.

주상복합은 분양가가 높은 데다 관리비도 비싸 일반 아파트에 비해 낙찰가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타워팰리스는 주거 전용률이 일반 아파트보다 작고 관리비가 비싸며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불편한 점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근거리 통학 등 교육정책 변화로 8학군 내에서 타워팰리스 주민이 이웃지역 아파트 주민보다 못한 학교를 배정받기도 한다. 한태욱 위원은 "주상복합은 수요층이 제한적이다 보니 매매가 원활하지 않는 등 유동성에 취약하다"며 "일반 아파트보다 유지비가 많이 들고 환기, 채광 등 웰빙 트렌드와 거리가 먼 것도 문제"라고 설명한다.

또한 주상복합단지 대부분은 고가의 중대형 평형으로 구성돼 있다. 타워팰리스의 전용면적 85㎡ 이하 중소형 비율도 2.3%에 불과하다. 최근 1~2인 가구 증가로 대형 평형 수요가 감소하면서 주상복합단지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양재모 한양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타워팰리스는 노후돼도 재건축이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높은 가격 때문에 대기수요자가 적어 환금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라고 설명한다.



고가 아파트는 숨 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오히려 지금이 투자할 때란 시각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주상복합 투자는 어떨까. 일단 현 시세보다 싸게 공급된 급매물만 노려야 한다. 주상복합아파트 투자 역시 입지가 중요한데 교육·교통환경을 기본으로 갖추고 강이나 산, 공원 조망을 확보하면 금상첨화다.

양해근 팀장은 "통풍이나 환기에 문제가 없는지, 관리비가 지나치게 높은 건 아닌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며 "주상복합은 대개 10억원 이상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한 채만으로도 종부세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어 이를 감당할 만한 능력이 되는지도 살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익종 다다디앤씨 사장은 "좁고 답답한 주상복합보다 한남동 한남더힐처럼 한강 조망을 갖추면서도 안락한 단지들이 부유층 관심을 끌고 있다"며 "입지, 인프라, 인지도가 강남 못지않은 한강변, 용산, 서울숲 근처 고급 타운하우스들이 주상복합 대체지로 인기를 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60호(10.06.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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