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공부환경을 위해 아이에게 비싼 책걸상을 사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의 학습태도에 따라 좋은 공부환경은 다르다.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먼저다.
'딸 우림이는 활발한 편이다. 주관이 뚜렷하다. 깔끔하다. 공부는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하고 필요한 과목은 과외로 보충한다. 친구들과 토론하며 문제 푸는 걸 좋아한다. 한데 중학생인데도 시험기간에는 카페를 찾아가 공부한다. '엄마. 방이 추운 것 같아요.' 중학교 3학년 가을께 우림이가 이런 소리를 했다. '공부방 바꿔볼까?''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에 사는 서은덕씨가 딸 이우림(한양대부속고 1학년)양의 공부방을 바꾸게 된 사연이다. 이양은 "중학교 때 공부방의 분위기, 구조 등이 학습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교 진학 전에 개선해보고 싶어 엄마에게 얘기했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초부터 약 3주 동안 3평짜리 공부방이 조금씩 변신을 했다. 처음에는 인테리어 업체를 알아봤지만 엄마는 단순히 돈 들여 가구만 바꿔주는 방식이 싫었다. 서씨는 "우리 딸 성격과 학습태도 등을 고려해 맞는 환경을 꾸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고민하던 중 <공부방 꾸미기 달인 프로젝트>(시냅스)의 공동저자이자 공부환경 컨설팅 회사 웰스터디(wellstudy.co.kr) 임한규 대표 도움을 받았다.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한테 비싼 책걸상을 사주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한다. 임 대표 생각은 다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 공부환경을 바꿔주려고 할 때 인테리어, 가구 업체 등을 찾아 비싼 제품을 사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값비싼 책걸상이라고 모든 아이에게 다 좋은 게 아니다. 아이 개개인의 성격, 학습태도 등 사용자의 성향에 따라 좋은 공부환경은 다르다. 자리 배치만 바꿔줘도, 저렴한 비용을 들여 시계나 스탠드만 사줘도, 아이에게 맞는 좋은 공부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
공부환경을 바꾸려면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먼저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는 성격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공부환경이 무엇인지 관심이 많은 편이다. 카페처럼 분위기 있는 실내 공간을 선호한다.' 이양의 성향이다. 임 대표는 "우림이 공부방을 바꿀 때는 주관이 뚜렷한 방 주인의 생각을 최대한 반영하는 게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의 공부환경을 바꾸는 일에 적극 참여시켜 내 공간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하면 좋다.
고1, 창가 바라봤던 책상 방향을 바꾸다
먼저 대부분의 공부방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문제부터 고쳤다. 이전 공부방을 살펴보면 "춥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책상은 방문을 등진 채 창문이 있는 외벽 쪽을 향해 있었다. 임 대표는 "창문 가까이 책상을 배치하면 밖이 잘 보이고, 확 트여서 공부할 때 졸음이 안 올 것 같은데, 사실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책상이 창을 바라보고 있을 경우, 창밖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쉽다. 온도 차이도 방해요소다. 봄·여름에는 따뜻해서 졸음이 밀려오고, 가을·겨울에는 추워서 집중력이 떨어진다.
책상이 문을 등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럴 경우, 아이들은 누군가 방에 들어올 것 같다는 불안함을 느낀다. 책상은 창이 있는 벽을 오른쪽에 두고, 방으로 들어오는 문 쪽을 향해 다시 배치했다. 사용하던 회전식 의자는 고정식 의자로 바꿨다. 회전식 의자는 몸을 좌우로 쉽게 움직이게 한다. 몸과 함께 시선도 좌우로 분산되기 쉽고 당연히 집중력도 떨어진다.
1. 책상이 문을 등지고 있으면
누군가 들어올 것 같은 불안감
2. 책장 불필요한 책 많으면 산만
3. 카페에서 공부하기 좋아하면
옷장 들어내고 테이블 설치
4. 학생의 성향을 최대한 반영
집중력 생겨 공부시간 길어져
6. 당장 성적 오른다는 기대보단
기초체력 다진다는 차원 접근
일반적인 문제점을 개선한 뒤 이양의 성격을 반영해 방 분위기를 바꿔나갔다. 이양은 시험 때 종종 카페에서 공부를 했다. 개방형 테이블이 놓여 있고, 음악도 잔잔하게 깔리는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 이런 성향을 반영해 공부방 한쪽 공간은 카페 분위기가 나게 꾸몄다. 벽면을 꽉 채우던 옷장은 들어내고, 책상을 놓고 남은 방 한쪽에 간단한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놨다.
은은한 불빛이 나오는 스탠드도 설치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이양이 직접 테이블과 스탠드 등을 고르게 했다. 벽에는 작은 화이트보드를 걸었다. 평소 친구들과 토론하며 문제 푸는 걸 좋아하는 학생들의 방에는 이렇게 화이트보드 등을 걸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학습 내용을 설명하는 상황을 연출해보게 하면 좋다.
책상 위, 시선 정면을 향해 놓여 있던 컴퓨터는 창가 쪽 벽면으로 치웠다. 여학생일 경우, 시선 정면에 컴퓨터가 놓여 있으면 모니터에 비치는 자기 모습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환경을 바꾼 뒤 이양은 공부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오래 공부를 해서 지루하다 싶을 땐 책상 앞에서 테이블 앞으로 자리를 옮겨 공부하기도 한다. 이양은 "중3 초에 몸이 아파 학교를 못 나가는 기간이 있었던 탓에 원하던 자율형사립고 진학이 어려웠었다.
한데 공부방을 바꾼 뒤 기말고사 성적이 정말 많이 올라서 결국 원하던 학교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공부환경을 바꿈으로써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던 시간이 줄었다. 공부방 변신은 나에게 맞춤한 가장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찾게 해줬다."
초등 고학년, 내 나이에 맞는 벽지를 고르다
아이들 성향은 다 다르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의 공부방은 대개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초등 고학년에 올라갈 때 인테리어 업체 홍보책자에 나오는 비싼 공부방을 그대로 선물 받곤 한다. 아무리 비싸고 예쁜 공부방도 아이와 궁합이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서울시 구로구에 사는 김민서(구로초 5학년)군의 공부방은 약 1.5평. 공간이 좁다. 4개월 전만 해도 공부를 하다가 거실로 들락날락한 적이 많았다. 김군은 최근 들어 방에서 2~3시간을 내리 숙제하고 공부하는 집중력을 보인다. 마법의 책걸상이라도 들여놓은 걸까 싶지만 엄마 김은숙씨는 "벽지 바꿔준 것 외에는 돈 들인 게 없다"고 했다.
"저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있어요. 활발하고 호기심이 많아요." 김군은 또래와 비교할 때 의젓하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할 줄 알았다. 임 대표는 "민서군은 초등 저학년 티를 벗은 상태고, 자기 주관도 뚜렷하며 독립심도 있는데 공부방은 아이의 성장을 반영하지 못했었다"고 했다.
4개월 전, 김군의 공부방에서도 책상은 창가 쪽을 바라보고 문을 등지고 있었다. 좁은 방인데도 책상 뒤쪽에는 책장이 세 개나 놓여 있었다. 책장에는 유아·초등 저학년 때 읽었던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방 벽지도 문제였다. 비행기, 달 등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는 어울리지만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는 김군한테는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었다. 임 대표는 "민서군 공부방은 아이가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성장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바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책상은 김군이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문이 보이는 곳에 배치했다. 김군은 "문을 등지고 있을 때에 비해 누군가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없어 집중하기 좋다"고 했다. 책장은 한 개로 줄였다. 읽지 않는 책들을 서가에 굳이 꽂아둘 경우, 꼭 읽어야 할 책들과 섞이기 쉽다.
현재 연령에 맞는, 꼭 필요한 책들 위주로 추렸다. 유치원 때부터 봐왔던 벽지는 차분한 느낌을 주는 은은한 초록색 벽지로 바꿨다. 아이 스스로 "내 나이에 맞는 방을 쓴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공부방을 바꾼 뒤 김군은 "청소는 엄마가 해주지만 책상과 서가 정리 등은 나 스스로 한다"며 "공부방을 지금처럼 유지하면 앞으로 더 집중력이 생길 것 같아 흐트러트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엄마 김은숙씨는 "아이가 성장하는 게 눈에 보여서 공부방을 바꿔줘야겠다 싶었다. 결과적으로 성장 속도 변화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변화를 잘 준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성장을 앞둔 초등학교 때 공부방을 바꿔주는 게 좋다고 이야기한다. 임 대표는 "이때 아이에게 맞는 공부환경을 잘 구축해주면 중·고교에 가서도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공부방을 새로 꾸밀 때 부모는 공부환경에 대한 투자를 아이 성장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로 여겨야 한다. 공부방 하나 바꿔줬다고 당장에 성적이 오른다고 기대하면 낭패를 보기 쉽다는 이야기다. <공부방 꾸미기 달인 프로젝트>의 공동저자 인천 은지초 정윤호 교사는 "공부환경을 바꿔준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아이의 공부 기초 환경을 점검해주는 거다.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시켜 성적을 올리는 것처럼 단번에 효과를 보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은 아이의 공부 기초체력을 다져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목고나 민사고 등에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자기 집 공부방에서 예·복습을 하는 습관이 배 있다. 어릴 때 자기 공부방에서 공부했던 습관은 대학까지 이어진다. 물론 학교 공부도 중요하다. 한데 공부를 해도 성과가 없는 아이들을 보면 집에서 절대 책을 펼쳐본 적도 없고, 자기 공부방이나 책상을 정리해본 적도 없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중요하다. 많은 부모들이 '나는 내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무조건 돈을 투자하면 된다는 경향도 강하다. 불편한 방향에 있던 책상 위치를 바꿔주는 등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다. 내 아이의 성격과 상황을 읽어보려는 관심이 필요하다."
김청연 기자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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