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이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를 어른이 돼서 찾아가보면 거리들이 옛날에 생각했던 것보다 좁아 보인다. 또한 옛날에는 그 거리들이 한없이 길게 보였는데, 지금은 몇 걸음 걷지도 않아 그 거리의 끝에 도달하고 만다. 골목길, 정원, 광장, 공원 등 모든 것이 옛날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버린 것 같다. 심지어 교실도 옛날보다 작아 보인다. 옛날에 비해 몸집이 똑같은 선생님들이 그 교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 번이라도 오랜만에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를 찾아본 사람이라면 위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잠시나마 기억이라는 게 참 묘하다고 느끼게 되리라. 세월의 문제는 곧 기억의 문제다. 네덜란드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Douwe Draaisma)가 쓴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Why Life Speeds Up As You Get Older)』(2001)가 주로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중년이 넘어간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아니,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지?" 이 물음엔 이미 상식이 된 답이 있다. "시간은 10대엔 시속 10킬로미터, 20대엔 20킬로미터, 30대엔 30킬로미터, 40대엔 40킬로미터, 50대엔 50킬로미터, 60대엔 60킬로미터로 달린다." 그런데 왜 그렇지?

1877년 프랑스의 철학자 폴 자네(Paul Janet, 1823 ~ 1899)는 사람의 인생 중 어떤 기간의 길이에 대한 느낌은 그 사람 인생의 길이와 관련되어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10세의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 1로 느끼고, 50세의 사람은 50분의 1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시원한 설명을 제공해주진 않는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 ~ 1910)의 다음과 같은 설명이 더 그럴듯하다.

"어렸을 때 사람들은 항상 주관적으로든 객관적으로든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불안감은 생생하고, 기억은 강렬하다. 그때에 대한 우리의 기억 속에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아주 재미있는 여행을 했을 때의 기억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여러 가지 일들이 길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이런 경험들 중 일부가 자동적인 일상으로 변해 사람들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되고, 하루 또는 일주일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알맹이 없이 기억 속으로 섞여 들어간다. 그래서 한 해의 기억이 점점 공허해져서 붕괴해버린다."

 

듣고 보니 그렇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경험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기억할 만한 것도 사라지고, 시간이라는 열차는 기억이라는 정거장을 경유하지 않은 채 마구 내달릴 게 아닌가 말이다. 이를 가리켜 '시간 압축 효과(time-compression effect)'라고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 교수 로버트 오른스타인(Robert Ornstein, 1942 ~ )은 16세기 풍속화가인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1525 ~ 1569)의 동판화 〈연금술사〉를 실험 참가자들에게 15초 동안 보여준 뒤, 다시 15초 동안 단조로운 사각형 그림을 보게 하는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각각의 그림을 얼마나 본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을 때, 이미지 정보의 양이 많은 브뤼헐의 그림을 더 오랫동안 본 것 같다고 응답한 사람이 많았다. 이 실험의 의미에 대해 이남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흔히 나이가 들면 하루하루 비슷한 일상으로 보내는 것이 지겹다고 말하는 동시에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기억 속에서 가져올 만한 정보가 적기 때문이다. 만약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색다른 경험을 하고 집중해서 처리할 일을 많이 한다면 다르게 말할 것이다. 혹은 메모나 사진 등으로 현재에 벌어지는 일들을 정리해 나중에 기억으로 떠올릴 만한 것을 많이 갖게 된다면, 지나간 시간을 되살리기 쉽기 때문에 시간이 덧없이 빨리 지나간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을 것이다."

드라이스마는 좀 다른 관점에서 시간 압축 효과가 일어나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망원경 효과(telescoping effect)'다. '망원경 편향(telescoping bias)'이라고도 한다. 망원경으로 물체를 볼 때 실제 물체와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게 느끼는 것처럼,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겪은 일들을 실제보다 최근의 일로 기억한다. 현재와 가까운 일처럼 인식하는 효과로 인해 시간적인 거리가 축소되고, 따라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회상 효과'다. 사람들은 기억 속의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알아내려 할 때 발생 시기가 잘 알려져 있는 사건들을 표식으로 이용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즐겨 쓰는 "내가 처음으로 무슨 일을 했을 때"라는 표현이 그걸 잘 말해준다. 그런데 나이 들수록 이런 표식이 줄어든다. 표식이 줄면 기억도 줄고 그만큼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질 것이다

셋째, '생리시계 효과'다.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가 줄어 중뇌에 자리한 인체시계가 느려진다. 미국 신경학자 피터 맹건(Peter Mangan)은 실험을 통해 나이에 따라 시간에 대한 감지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알아냈다. 9~24세, 45~50세, 60~70세 연령대별로 3분을 마음속으로 헤아리게 했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났다.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은 3분을 3초 이내에서 정확히 알아맞혔지만 중년층은 3분16초, 60세 이상은 3분40초를 3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생리시계가 느려지니 실제 시간은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리라.

 

유정식은 『착각하는 CEO』에서 시간 압축 효과의 의미를 기업 경영에 접목시켰다. 그는 "잘나가던 노키아는 왜 뒤처졌나?"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인간으로 구성된 기업이 경험하는 환경의 변화 속도 역시 그러하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노쇠한 기업이 환경의 변화 속도에 대응하려고 나름의 전략을 세운 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실행에 옮기려고 할 때면 이미 그 정도의 변화는 경과한 지 오래이기 십상이다."

나이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른다고 하지만,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다. 한국처럼 초고속 압축 성장을 이룬 나라에선 '속도 경쟁'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치열하기 때문에 노인이 되는 속도도 빨라 시간의 속도 감각을 더욱 빠르게 만든다. 경로(敬老) 사상이 제법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대가는 가혹하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조로(早老)를 강요한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한국처럼 '젊은 기자', '젊은 앵커'가 판치는 나라는 없다.

외국인들은 늘 그 점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캐나다인으로 장안대학교 영어과 교수인 매튜 클레먼트는 「너무 일찍 늙는 한국인」이라는 칼럼에서 "연예인들 얘기를 할 때면 '벌써 30대, 혹은 40대……'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40대의 여가수가 섹시 의상을 입고 나서면 그야말로 '사건'이 된다. 그 가수 나이가 몇인데……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한국인들은 남보다 더 일찍 늙는 걸까"라고 묻는다.

 

"로비의 안내데스크 등에서 나이가 많은 여성, 혹은 남성이 앉아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이런 일이야말로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뉴스를 전달하는 아나운서나 승무원도 나이와 상관없는 일인 것 같다. '이 나이에 이런 옷을 어떻게 입어'라든가, '그런 짓을 어떻게 해, 내 나이가 몇인데……'라는 말을 들으면서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스포츠카를 몰아도 되는 나이, 짧은 스커트를 입을 수 있는 나이, B-boy 댄스를 배울 수 있는 나이……. 나는 궁금하다. 도대체 누가, 왜, 나이에 대한 특별한 선입견을 만들어서 그 모든 것을 막고 제한하는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한국처럼 노인을 공경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박대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노인 문제는 사실상 계급의 문제이기도 하다. 누가 대통령이나 재벌 회장을 나이 많다고 차별하는가? 권력 없고 돈 없는 노인만 서러울 뿐이다. 노인이 박대 받는 세상에선 노인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사회적으로 노인 박대는 자해(自害)다. 한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13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613만 7,702명으로 전체 인구의 12.2퍼센트를 차지했으며, 2025년 1,000만 명을 넘어선 뒤 2050년 1,799만 1,052명을 기록, 전체 인구의 37.4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속도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편에 속해, 노인의 노동력을 활용하고 그들의 사회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디자인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흔들릴 정도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건 '시간 압축 효과' 때문이라지만, 국민적 차원에서 보자면 우리가 이룩한 세계 초유의 압축 성장이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세상을 너무 빠른 속도로 살아온 탓에 안전을 돌볼 겨를도 없었고, 그래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적 사태를 맞이하게 된 건 아닐까? 뒤늦게나마 여기저기서 '느리게 살기'의 장점을 예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간 누려온 물질주의적 삶을 어느 정도 포기하겠다는 각오조차 없이 느리게 살겠다는 건 심리적 수명을 연장하려는 또 다른 탐욕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네덜란드연기금 박유경 이사 인터뷰

▶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 논란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세계 최대 규모 연기금 중 하나인 네덜란드연기금의 자산운용사인 에이피지(APG)의 박유경 이사를 만났다.

 

박 이사는 아시아지역 지속가능성 및 지배구조 담당 총책임자다. 지난 6월초 엘리엇이 삼성 공격에 나선 이후 외국인 투자자 30~40곳의 뜻을 반영해 삼성과의 대화창구 구실을 하면서, 합병비율이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기 때문에 합병에 반대하지만 엘리엇과 직접 행동을 같이하지는 않는다는 일관된 입장을 지켜왔다.

"한국은 올바른 기업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APG)의 박유경(46) 이사는 최근 삼성, 에스케이 등 한국 재벌 계열사들의 합병 논란을 바라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생각을 이렇게 압축했다.

박 이사는 지난 7일 서울에서 < 한겨레 > 와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시대는 이미 21세기인데 한국은 여전히 20세기 지배구조를 고수하다니 어찌 이런 일이라는 탄식이 나온다"며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갖지 못한 기업은 진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박 이사는 "과거 지배구조 후진국으로 불렸던 일본은 아베 정부가 들어선 뒤 지배구조를 대폭 개선하면서 이제는 한국보다 (지배구조가)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중국 기업도 한국보다 훨씬 더 주주친화경영을 하는 것을 보면 한국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당장 주총에서 합병이 성사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라, 기업이 입은 명성과 이미지의 타격을 어떻게 회복할 것이냐"라며 "이를 위해 기업들과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지배구조란 무엇인가

-최근 한국 시장에서는 재벌 계열사 합병을 둘러싸고 잇달아 주주이익 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생각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지배구조'다. 다시 말해 한국은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대는 이미 21세기인데 한국은 여전히 20세기 지배구조를 고수하다니 어찌 이런 일이'라고 할까? 한국 기업들의 후진적 지배구조로 인한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기업들의 주가 저평가)는 최소 20%다."

-지배구조란 간단히 무엇인가?
"교역선에 상품을 실어 먼 나라로 떠나보내는 상인에 비유할 수 있다. 상인은 직접 배를 타고 가지 않는 대신 배가 돈을 많이 벌어 되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배가 항해는 제대로 하는지, 외국에 도착해서 거래는 제대로 하는지 등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내부 감시·견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어떤가?
"일본은 아베 정부가 들어선 뒤 지배구조가 대폭 개선됐다. 투자자들이 맡긴 돈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스튜어드십 코드와, 기업들이 지켜야 할 지배구조 코드가 새로 만들어졌다. 아베 정부는 일본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돈을 더 풀고,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린 것뿐만 아니라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건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기업들이 주주를 위한 경영에 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면 경제가 활력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일본은 과거 지배구조 후진국으로 불렸으나, 이제는 한국보다 (지배구조가)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어떤가?
"홍콩이나 중국 상장기업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와 외부차입, 이해관계자와의 거래(내부거래)를 할 때면 주총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사회 결정으로 끝내는 한국에 비해 주주권한이 훨씬 강하다. 내부거래를 승인할 때는 지배주주나 계열사 지분은 제외하고, 나머지 독립적 주주들로만 의결을 한다. 중국 기업이 한국보다 훨씬 더 주주친화경영을 한다. 솔직히 중국을 보면 한국이 걱정된다. 주주친화적이지 않은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제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이전에는 한국 기업은 핵심 장기투자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지배구조 문제 때문에 자본시장의 건강성이 약해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에서 배당이 차지하는 비율)만 봐도 선진국은 50%를 넘고, 대만은 평균 80%에 달하는데, 한국은 1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부거래를 할 때 주총 승인을 받지도 않지만, 주총을 거치게 하더라도 지배주주나 계열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역차별이라고 난리가 날 것 같다.

"이해관계자를 의결권 행사에서 제외하는 것은 선진국은 물론 홍콩, 싱가포르, 인도 등 모두 동일하다. 한국과 일본만 예외다. 한국의 재벌이 모든 주주들을 위한 경영이 아닌, 특정 지배주주(오너)를 위한 경영을 하는 것과 대조된다. 한국 기업은 말로는 주주를 위한 경영을 강조하지만, 그 말뜻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분기에 한번씩 투자자설명회(IR)를 하고, 해외에 직접 나가 설명한다고 주주를 위한 경영을 하는 게 아니다."

-투자, 차입, 내부거래 등을 모두 주총에서 결정하면 회사의 의사결정 지연 등 부작용도 있지 않을까?

"전자투표를 하면 주총을 자주 열어도 부담이 없다. 한국도 빨리 도입해야 한다."(박근혜 정부는 전자투표 도입 등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다가 재계가 반대하자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주주친화경영은 무엇인가?
"기업의 내재가치를 높이고, 투자하고 남은 잉여이익은 주주들에게 적절히 환원하는 경영을 말한다. 중국 상장기업들의 경우 정관에 배당성향은 30% 이상이라고 못박아 놓고 있다."

-평균 5% 지분도 갖고 있지 않은 재벌 총수들이 절대권한을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관행은 부당하고, 나머지 주주들도 제대로 주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나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인 투자자나 소액주주들은 배당 확대만 요구하고 회사의 장기 발전에는 관심이 적다는 비판도 있다.

"기업 이익을 무조건 배당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성장동력 확보에 필요한 투자를 우선적으로 하고, 남은 재원은 주주들에게 환원하라는 것이다. 주주친화경영을 제대로 하려면 주주들의 뜻을 반영하는 이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 기업의 이사회는 제 기능을 못한다. 사외이사들의 역할은 경영진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주주들을 위한 경영을 하는지 감시·견제하는 것이다."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라는 지적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사회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사외이사는 단지 회사 밖에서 선정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배주주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 또 수적인 독립성도 중요하다. 그래서 50% 이상을 사외이사로 해야 한다."

한국은 21세기에 20세기 지배구조
경영진과 이사회가 전체 주주 아닌
특정 1인(지배주주) 이익만 중시해
일본은 아베 정부 이후 대폭 개선
중국도 한국보다 주주친화경영
석유화학과 철강업종 바닥일 때
한·중의 투자자 리포트 분석했더니
중국은 70~80%가 주식매각 권유
한국은 90% 이상이 주식매수 권유
수십년간 이런 게 개선 안되더라


헤지펀드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독립된 사외이사를 어떻게 뽑나?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회사가 사외이사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용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배구조는 일종의 '문화'다."

-주주친화경영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지배구조 개선과제를 꼽는다면?
"주주-이사회-경영진으로 이어지는 이해관계의 불일치 문제가 심각하다. 경영진이나 이를 감시해야 할 이사회가 전체 주주가 아닌 특정 1인(지배주주)의 이익만 중시한다.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논란이 빚어지는 이유다. 또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기능을 못하는 '마네킹'이다. 이사들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왜(Why)라고 물어야 하고, 주주이익에 배치되는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아니오(NO)라고 말해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의 재벌체제와 관련된 개선과제도 있을 텐데?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경영권의 안정을 확보하면서도 (지배주주뿐만 아니라) 모든 주주를 위한 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그러면 외국 주주들이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투자한다."

-특정 지배주주가 없는 비재벌 기업들은 어떤가?
"주인 없는 기업들의 지배구조도 문제다. 어쩌면 주인 있는 회사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주인 있는 회사는 최소한 회사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주인 없는 회사는 경영진이 자기 이익을 위해 회사를 망칠 수 있고, 이를 막아야 하는 이사회도 제구실을 못한다."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가들이 제구실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은데.
"한국은 국내 시장참여자들이 제구실을 안 하는 것 같다. 석유화학과 철강업종이 바닥 상황일 때 한국과 중국 증권사의 투자자 리포트를 분석한 적이 있다. 중국 리포트는 70~80%가 주식 매각(Sell)을 권유했다. 하지만 한국 증권사 리포트는 90% 이상이 주식 매수(Buy)를 권유했고, 나머지 10%도 주식 보유(Hold)였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한국은 수십년간 이런 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기자가 아는 자산운용사의 임원은 주총에서 회사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압력 때문에 고민이라고 털어놓더라.

"이해관계 때문에 투자자들의 돈을 받아서 운용하는 사람들이 독립적인 결정을 못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소외되는 것도 문제다. 일본의 평균 외국인 지분율은 30% 정도다. 한국은 40% 정도로 훨씬 높다. 삼성전자 등 대표기업들의 외국인 지분은 50%를 넘는다. 그리고 외국인은 모두 세계적인 투자자들이다. 한국의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외국인 주주들에 대해서도 제 대접을 해달라고 요구하면, '여기는 한국이다'라며 딴소리를 한다."

-제도적 측면에서 개선과제는?
"한국 상법은 주주권이 너무 약해 개선이 필요하다. 앞서 중국은 투자, 차입, 내부거래 등을 모두 주총에서 결정한다고 소개한 것과 대조적이다."

-2003년 이후 외국계 헤지펀드의 한국 기업 공격이 소버린, 칼아이칸, 헤르메스에 이어 엘리엇이 네번째다. 해당 재벌이나, 한국의 보수언론과 학자들은 단기차익을 노리는 먹튀자본으로 공격하는데?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이익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헤지펀드는 자신들이 잘하는 방법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들이 불법을 한 게 아니지 않은가? 사실 헤지펀드라고 다 단기 투자자도 아니다. 10~20년씩 투자를 하기도 한다. 한국 재벌은 내수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글로벌 고객과 거래업체, 이해관계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국제 규범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이것이 싫다면 한국 내수시장에서만 장사를 하면 된다."

-한국 기업들이 헤지펀드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주주친화경영을 통해 헤지펀드가 아닌 나머지 장기투자 성향의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받으면 된다. 그 방법밖에 없다. 펀드들은 보수적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현 경영진을 교체하기를 원하지 않고, 회사 경영에서 급격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경영진을 신뢰하고 지지한다. 그런데 재벌이나 한국 언론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모두 엘리엇과 동일시하면서 적으로 돌리고 있다. 큰 잘못이다."

-전경련 등 일부 경제단체들은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경영권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황금주, 포이즌필(신주인수 선택권), 복수의결권제도 도입 등을 주장하는데?

"포이즌필은 일본 등 극소수 나라에만 있다. 황금주나 복수의결권도 스웨덴이나 미국 등 일부에만 있다. 국제적으로 일반화된 제도들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어수단은 주주친화경영을 하는 것이다."

3세 승계와 주주친화경영

-재벌 계열사 합병의 공정성 논란은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 재벌은 3세 승계 차원에서 지배력 강화 과제를 안고 있다. 다른 한국 재벌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3세 승계도 하면서, 주주친화경영도 하는 방안은?

"일반 주주들 입장에서도 경영권 안정을 위한 지배력 강화는 필요하다. 경영권이 불안하면 경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경영 승계를 위한 구조개편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개편을 하되 취할 것은 취하고(경영권 안정), 줄 것은 주라(주주친화경영)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조개편은 합법적이어야 하고, 지배주주 이외의 나머지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해서는 안 되며, 구조개편이 끝난 뒤 회사가 지금보다 좋아져야 한다(시너지 효과)는 세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하게 됐나?
"처음에는 은행에서 일을 시작했다가 베어링증권으로 옮겨서 애널리스트로 10년 이상 근무했다. 베어링이 망한 뒤에 샐러먼스미스바니증권으로 옮겨서 일하다가, 다시 홍콩에 있는 지배구조 관련 비영리단체(NGO)를 거쳐 2009년부터 네덜란드연기금에서 일하고 있다."

-연기금의 지속가능성과 지배구조 관련 업무를 하면서 남다른 자부심이 있을 것 같다.
"(긍정의 웃음을 지으며) 은행에서 일할 때는 모든 잣대는 돈이라는 한가지였다. 하지만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나.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다. 배운 것이 금융이니 금융시장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다. 지배구조와 지속가능성은 사회에 이로운 것이고, 기업이 제대로 대처하면 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중시하는 인권경영은 사회적으로도 필요하지만, 기업으로서도 이를 무시하면 제대로 경영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 선진국 기업들의 경우 산업재해율이 높은 기업과는 거래를 기피할 정도다. 그런 인사이트를 투자 기업의 경영진에게 전해주면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네덜란드의 일반공무원과 교육공무원 280만여명의 연금을 관리하는 펀드다. 한국으로 치면 공무원연금과 교원연금을 합친 것이다. 운용 자산 규모가 2014년말 기준 4030억유로(한화 약 500조원)로 연기금에서는 유럽 2위, 세계 3위권이다.(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운용 자산 규모는 올해 4월말 현재 491조원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식, 채권은 물론 대체투자(지하철 같은 인프라 투자와 빌딩 같은 부동산 투자 등을 합친 개념)를 하고 있다. 투자기업의 재무적 측면뿐만 아니라 비재무적인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 등의 세 요소(ESG)까지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 원칙을 지키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중국의 투자 규모가 가장 크다. 한국에도 100여개 기업에 2조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는데,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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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S여파가 가라앉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감이 실생활에서 현실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주식시장 참여자 입장에서는 경제 악화 우려로 인한 향후 주식시장에 대한 우려감 또한 커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거 세계를 공포에 떨게하였던 전염병 창궐시기 증시는 어떠했을지 살펴본다면, MERS여파가 증시에 미칠 영향을 가늠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ㅇ 1918년 스페인독감 : 전세계 인구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전염병이라한다면, 14세기 유럽을 뒤흔들었던 흑사병이 있습니다. 그 당시 사망자수가 2500만명이었다고 분석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은 5000만명이라는 사망자를 만든 전염병이 바로 1918년 스페인독감입니다.  (미국에서 발생하였지만, 언론통제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스페인에서 최초로 보도되면서 스페인독감으로 명명되게 됩니다.)

 

 

[100여년 전, 스페인 독감 당시 미국 병동의 모습]

 

당시는 1차세계대전 말기였는데, 1918년 6월 발생하여 9월에 미국에서 첫사망자가 발생 한 뒤, 한달만에 미군(노약자가 아닙니다. 장정) 2만4천명이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하기에 이릅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한국도, 전체인구중 40%에 해당하는 758만명이 발병하여, 14만명이 사망했다고 할 정도로, 스페인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면서 큰 희생자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공공시설물을 이용할 수 없었고, 경제에 대한 우려도 컸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1차세계대전이 마무리 되어가는 시기였기에 경제가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시 미국의 S&P500지수를 보면

 

 

[스페인독감 시기 미국 S&P지수]

 

S&P지수(청색선, 우축)는 스페인독감이 창궐하던 시기 전염병의 공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입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real S&P지수의 경우 1919년 후반부터 조정세가 나타나긴 합니다만, 이 원인이 스페인독감 때문인지, 아니면 1차 세계 대전 후에 경제적 공백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건 스페인 독감의 공포에 비해서는 미국증시는 스페인독감이 크게 영향은 주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ㅇ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

 

그 이후 20세기 중반, 1957년에 아시아독감이 유행하면서 200만명이 사망하고, 10년 뒤 1968년 홍콩독감이 유행하면서 100만명이 사망하면서 또 한번 전세계는 독감 공포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당시 미국 경제성장률은 1955년 7.2%에서 1957년 2%, 1958년 -0.9%로 하락했다고 합니다.(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자료)

FRED자료에서도 그 시기 미국 경제 성장률이 급감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57년 아시아독감시기와 홍콩독감 시기 미국 경제성장률, 원자료 : FRED]

 

1957년 아시아 독감은 200만명이라는 사망자가 발생되면서, 1957년 미국 경제 침체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67~68년에 홍콩독감은 그 사망자수가 100만명에 이르렀던 것에 비하면 여파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시기, 미국 증시는 어떤 흐름이 나타났을까요?

 

 

[1957년 아시아독감시기와 68년 홍콩독감 시기 미국증시]

 

1957년 아시아독감 시기에는 미국 경제 성장률 침체가 나타난 것처럼 미국증시 또한 대략 20%가까운 조정폭이 그 해 하반기에 나타납니다. 어느 정도 아시아독감이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1967~68년 홍콩독감 시기는 오히려 증시가 상승하면서 경제성장에 영향을 주지 않은 것처럼 증시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ㅇ 2002년 11월~ 2003년 7월 : SARS(사스)

 

2003년 초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SARS는 중국과 홍콩 경제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 당시 2003년 2분기 중국 GDP성장률은 7.9%로 직전분기 10.8%에 비하여 3%p 급감하였고, 홍콩의 경우는 4.1%에서 -0.9%로 역성장을 기록하는 등 홍콩을 중심으로한 중화권에 미친 경제 타격은 컸습니다.

(그 당시 트라우마로 인해, 이번 한국 MERS사태에 중국과 홍콩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홍콩 쪽 증시흐름은 어떠했을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SARS당시 홍콩증시의 흐름]

 

2002년 이어진 조정세는 SARS가 확산되면서 추가 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스페인 독감 때처럼 전쟁이슈가 이 시기에 중첩됩니다. 당시 미국의 이라크전 개전 가능성이 농후 해 지면서 글로벌증시도 약세흐름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홍콩증시는 그 약세흐름이 한달정도 더 이어집니다. 한국증시는 2003년 3월에 바닥을 찍었지만, 홍콩증시는 4월에 바닥을 찍게 됩니다.

 

오히려 그 이후 주가 상승은 가파르게 전개되면서, SARS우려로 주가하락하였던 부분을 모두 회복하게 되고, 그 이후 2007년까지 화려한 랠리를 중화권 증시에서 나타났습니다.

 

 

ㅇ MERS여파, 증시에 일정부분 악영향있다. 단! 최대한 빨리 확산을 막아야

 

전염병에 따른 증시 여파, 그 강도에 따라 해당 국가에 일시적인 영향이 일정부분 나타났고, 전염병 확산이 안정되고 끝난 후에는 증시는 강하게 회복되었음을 위의 자료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MERS여파도 단기~중기적인 악재로 한국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을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확산을 막아야만 합니다.

 

20세기초 스페인 독감 당시, 독감을 잡았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마스크라 할 정도로 사람들이 유난하게 대응한 후에야 독감이 진정되었습니다. 2003년 당시에도 유난할 정도로 SARS를 원천 차단하고, 전국민이 주의하면서 그 여파가 국내에 미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MERS의 경우 이름을 코르스로 바꾸어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어야할 정도로, 한국 내에서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나마 MERS를 단순한 독감이 아닌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인정한 후에야 서서히 그 증가 속도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때, 최대한 빨리 추가 확산을 막아, MERS여파를 단기화 하여야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우려하는 경제 침체도 막게 되고, 증시에도 장기적인 악영향을 주지 않을 것 입니다.

여러 기업들이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신입사원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일부 대기업은 많은 이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채용 문을 꽁꽁 닫아걸어 구직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경영 상황이 괜찮은데도 그저 채용 규모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고용 창출을 통한 사회 기여’라는 기업의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은 외면한 채 이익을 챙기는데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익 많이 나도 채용은 무관심

국내 최대의 에너지·정유기업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내지 않았다. 예년 같으면 벌써 채용이 끝났어야 할 시점이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런 일정을 전혀 수립하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3월 있었던 SK그룹 공채 때도 신입사원을 선발하지 않았다. 회사측은 신입사원 채용 문제에 대해 “미정”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금년에도 선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회사의 경영 상황과는 크게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 들어 이익을 많이 거뒀고 그 규모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에만도 303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데다, 2분기에도 기름값 반등에 힘입어 약 5000억원의 돈을 벌어들일 것으로 증권가는 분석하고 있다. 또 갖고 있던 땅 가운데 사용하지 않던 곳이나 해외 자원 지분을 팔면서 현금 유동성도 크게 좋아진 상태다. 더욱이 SK이노베이션이 SK텔레콤과 함께 SK그룹을 상징하는 양대 대표 기업이라는 위상까지 고려하면 이런 행보는 상당히 독특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매출 규모가 SK이노베이션에 비해서 절반도 되지 않는 다른 정유업체들은 올 상반기 신입사원 선발에 나서며 고용에 기여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올 5월 신입사원 공채를 실시했고, 현대오일뱅크 역시 3월에 공채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대졸 구직자들의 취업 숨통을 틔워줬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대규모 명예퇴직만 실시해 많은 직원을 회사에서 내보냈다.

 

외면하는 사회적 책임과 미래

일부 기업들은 그나마 뽑던 인력 규모를 감축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건설업체들의 경우 지난해 상당수가 흑자 전환한데 이어 최근 주택 경기 호황으로 실적이 더 개선되고 있지만 채용은 오히려 줄이고 있다.

대우건설의 경우 지난해 4270억원의 이익을 거뒀지만 올 상반기에는 신입사원 채용 계획이 없다.

 

대우건설은 예년엔 해마다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신입사원을 뽑았다. 하지만 올해는 하반기에만 공채를 하기로 했다. 이 회사의 대졸 신규 채용 인원은 140명(2012년), 100명(2013년), 70명(2014년) 등 매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한화건설도 해마다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50여명씩 뽑았지만 올해엔 상반기에 채용을 하지 않고 하반기에만 뽑을 예정이다.

 

비교적 안정적 수익을 올리는 대기업 계열 소프트웨어회사들도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연합회가 최근 LG CNS·SK C&C·삼성SDS 등 대기업 회원사를 대상으로 올해 인력 운영 규모와 이익 예상치를 조사한 결과, 대기업 회원사들은 올해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6.9%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인력 운영 규모는 지난해보다 0.7%만 늘릴 것이라고 답했다. 실질적으로 직원을 거의 더 뽑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돈을 벌고 있는 기업들이 채용에 나서지 않는다면 대졸 구직자들의 사회 진입 장벽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카이스트(KAIST) 장영재 교수는 “사회에 대한 기여 뿐 아니라 회사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기업들이 당장의 경영 지표를 보기 좋게 만들겠다는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 창의성 높은 젊은 인재 확보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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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기성훈 기자] [편집자주] < 머니가족을 소개합니다 >

 

머니가족은 50대초반의 나머니 씨 가족이 일상생활에서 좌충우돌 겪을 수 있는 경제이야기를 알기 쉽게 전하기 위해 탄생한 캐릭터입니다. 머니가족은 50대 가장 나머니씨(55세)와 알뜰주부 대표격인 아내 오알뜰 씨(52세), 30대 직장인 장녀 나신상 씨(30세), 대학생인 아들 나정보 씨(27세)입니"다. 그리고 나씨의 어머니 엄청나 씨(78세)와 미혼인 막내 동생 나신용 씨(41세)도 함께 삽니다. 머니가족은 급변하는 금융시장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올바른 상식을 전해주는 것은 물론 재테크방법, 주의사항 등 재미있는 금융생활을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머니가족의 좌충우돌 재테크]"누구나 당할 수 있다"…주요 사기유형 숙지 후 예방이 중요]

50대 회사원 나머니씨는 최근 친구가 전자금융사기를 당했다는 소식에 놀랐다. 친구로부터 사기 수법을 듣고는 더 믿기지 않았다.

나씨의 친구가 당한 사기 수법은 이렇다. 집에 있던 나씨의 친구가 직장 상사로부터 "지금 급히 200만원을 송금해야 하는데 인증서 오류로 이체가 안 된다. 그러니 대신 송금해주면 내일 돈을 주겠다"라는 메신저 메시지를 받았다. 친구는 의심 없이 직장 상사가 알려준 계좌번호로 돈을 입금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친구는 상사의 메신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도용한 '메신저 피싱'임을 알게 됐다.

70대 어르신도 아니고 50대인데도 금융사기를 당하다니 나씨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나는 안 당하겠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다양해지는 금융사기 수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끝나지 않는 피싱 사기 수법 "알고도 당한다"

보이스피싱은 개인정보를 활용한 가장 흔한 범죄다. 보이스피싱이 국내에 처음 등장했던 때는 2006년이다. 2000년대 초반 대만에서 시작돼 이후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지역으로 확산됐다. 처음엔 단순히 환급금을 받아가야 한다며 사람들을 속였다면 지금은 "아들이 납치됐다"고 협박하는 등의 다양한 수법으로 돈을 요구한다.

금감원이나 관공서를 사칭, 개인정보를 빼낸 뒤 돈을 대출받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경찰, 검찰 등 법집행 기관까지 사칭해 서민들을 울리고 있다. 이 같은 보이스피싱은 단독 범죄가 아니라 본부와 콜센터, 인출팀, 계좌모집팀 등 네크워크를 이뤄 움직이는 조직형 범죄라는 점이 더 무섭다.

특히 정보통신(IT)기술 발달과 함께 전화 대신 메신저를 이용해 피해자를 속이는 메신저 피싱이 최근 빈번하게 나타난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메신저를 이용해 주로 친척이나 지인을 사칭해 접근하는 사기 수법이다. 피해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낯선 사람에게는 절대 금융거래정보를 알려줘서는 안 된다. 세금, 보험료 등을 환급해준다며 현금지급기로 유인하는 것도 절대 응해서도 안 된다. 메신저 피싱을 막으려면 보안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해 최신 버전으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메신저를 통해 개인정보를 주고받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은행원까지 속게 만든 '파밍 피싱'

최근엔 악성코드를 이용해 컴퓨터(PC)에서 개인정보를 빼낸 뒤 이를 이용해 피해자 계좌에서 수억원을 인출한 사기단이 경찰에 적발됐다. 금융사기 수법이 워낙 정교하다보니 현직 은행원도 피해를 봤다. 이번에 적발된 이들은 PC 이용자들이 자주 갈 만한 사이트를 미리 해킹해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자동으로 PC에 악성코드가 설치되도록 한 뒤, 2단계에 걸쳐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를 빼냈다.

악성코드에 감염된 PC 사용자가 포털·은행 사이트에 접속하면 악성코드를 통해 '파밍(가짜·Pharming) 사이트'로 유인해 전자금융사기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정보를 입력하게 했다. 피해자 중에는 은행 직원도 있었지만 파밍 사이트가 가짜인지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밍 수법은 미리 심어진 악성코드가 위조 사이트로 연결하도록 돼 있어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피해가 늘고 있다. 따라서 예방이 최선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평소에 컴퓨터 운영 체제나 인터넷 브라우저 등을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 해 놓으면 파밍 사기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면서 "경찰청에서 무료 배포하고 있는 파밍방지프로그램인 '파밍캅'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스마트폰이나 PC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파일과 이메일, 인터넷 주소 등을 클릭하지 말고 바로 삭제해달라고"고 당부했다.

◇신종금융사기 메모리 해킹은 무엇…

모바일 결제 등 전자금융 이용 빈도가 늘어나면서 '메모리해킹'이란 신종사기수법이 등장했다.

메모리해킹은 컴퓨터 메모리에 저장돼 있는 수취인 계좌번호, 보안카드 비밀번호를 절취해 정상 은행 사이트에서 보안카드번호 앞뒤 2자리만 입력해도 부당 인출되는 수법이다. 악성코드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파밍과 유사하다. 하지만 가짜사이트로 유도하는 파밍과 달리 메모리해킹은 보안카드 앞뒤 2자리만 입력해 정상적인 거래를 할 때와 같은 양의 정보만 입력하도록 한다.

특히 금융회사 사이트에서 인터넷뱅킹 중 오류로 인해 갑자기 거래가 중단되거나 거래완료 후 보안번호를 추가 입력하라고 요구하면 메모리해킹을 의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메모리해킹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컴퓨터 등의 보안앱과 백신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 해 최신 버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통장이나 보안카드 등의 비밀번호, 현금카드, 신용카드 등을 사진이나 문서로 저장하면 안 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피해가 발생하면 즉시 금융사 콜센터나 경찰청(☎112)에 전화해 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면서 "신속한 계좌 지급정지를 하면 피해금이 인출되지 않고 남아있으면 소송 없이 되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기성훈 기자 ki03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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