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맡겨 키웠더니 옆집 아줌마 대하듯 해요”

 

“저랑 눈도 안 마주치고 손도 못 대게 해요, 엄마·아빠가 싫고 부담스럽대요.”

설 연휴인 지난 18일 박경희(여·33)씨는 아들을 맡아 기르고 있는 시댁에 갔다가 아이의 ‘엄마 기피’ 증세에 깜짝 놀랐다. 다섯살인 아들은 엄마·아빠가 다가오기만 해도 소스라치며 도망치기 바빴다. 맞벌이인 박씨 부부가 생후 4개월 된 아이를 부모님에게 맡긴 후 주말에만 만나는 생활이 4년째였다. 박씨는 “할머니가 잠시만 안 보이면 아이가 ‘엄마 싫어’하고 흐느끼고, 불안해서인지 말까지 더듬는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까 심각히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양가 부모나 가정 도우미에게 자녀를 맡기는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들로부터 ‘외면’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아이들의 양육을 맡기다시피 하는 맞벌이 부모를 아이들이 거부하는 것이다. 이루다 아동발달연구소의 현순영 소장은 “한달에 한두 번 부모 얼굴을 보는 상황이 몇 년간 이어질 때, 아이는 엄마를 낯선 사람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 아동상담센터에는 이런 문제를 상의하러 온 맞벌이 부부들이 크게 늘고 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이 돼서야 부모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가은(가명·여·38)씨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 명은이의 손을 잡고 최근 서울의 한 아동상담센터를 찾았다. 명은이는 5년간 부모와 떨어져 대구의 할머니 집에서 컸다. 이씨는 “아이가 엄마·아빠 전화도 피하더니 이젠 나를 때리고 꼬집기까지 한다”며 “맞벌이를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인터넷 맞벌이 부부 카페에는 “엄마 싫다며 울고불고 하는 아들 때문에 서러워 같이 울었다”, “아이가 나를 이웃집 아줌마처럼 대한다”는 내용의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신의진 연대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만 3세까지 부모와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학교생활에도 적응하기 어렵다”며 “지방에 아이를 맡겼더라도 자주, 그리고 규칙적으로 내려가 성의껏 놀아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01~2005년의 5년간 대인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보이는 정서장애 어린이가 4600명에서 5870명으로 30% 가까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맞벌이 부부의 증가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현재 맞벌이 가정의 비율은 전체의 약 44%(통계청). 2~3가구당 한 가구 꼴이다. 이중 40%가 부부 모두 주 평균 54시간 이상 일한다.

아이를 양가 부모나 친척에게도 맡길 수 없는 맞벌이 부부의 고통은 더욱 크다. 가정 도우미가 너무 자주 바뀔 경우, 심하면 아이가 자폐증세까지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육아 도우미에게 아이를 맡기는 맞벌이 부부들은 끝없는 ‘채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동갑내기 맞벌이인 성모(여·29)씨 부부도 최근 3개월간 도우미 월급을 두 번이나 올려줬다. 아이와 궁합이 맞는지 사주까지 보며 열차례 면접을 통해 결정한 도우미였다. 성씨는 “아이가 이제 겨우 아줌마한테 정이 들었는데, 걸핏하면 그만두겠다고 해 집안일도 제대로 못 시키고 눈치만 보고 있다”며 “상전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한국아동상담센터 김성은 부소장은 “나는 바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아이를 방치하는 맞벌이 부부를 최악으로 꼽았다. 심한 경우 아예 일탈행위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소영(가명·8)이는 얼마 전 저금통을 들고 6시간 동안 가출을 감행했다. 소영이는 가출 전 맞벌이인 부모에게 “회사 그만두면 안되냐” “날 또 어디에다 맡길거냐”라고 물었다. 김성은 부소장은 “부모-자식간에 제대로 관계형성을 못 한 상태에서 아이를 다그치면 관계가 계속 어긋난다”며 “부모들은 일단 멀어진 관계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남인기자 kni@chosun.com]

[박명진 인턴기자 (고려대 영문학과2)]

‘학교 얼굴’ 홍보모델 되기 별따기

 

 

대학생들 사이에 ‘학교 홍보모델’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홍보모델이 되기 위해 밤을 새워 ‘프레젠테이션’(발표회)을 준비하고 선배들에게 면접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재수를 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홍보모델은 재학생들에게 1석2조의 이익을 준다. 학교 대표로 폭넓은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데다, 대다수의 기업이 입사시험 때 홍보모델 경력을 높이 쳐주고 있다.



숙명여대 4학년 이정미씨(24·영문학과)는 홍보모델을 하기 위해 재수했다. 2학년 때 응시했다가 서류에서 탈락했으나 지난해 재도전해 50대 1의 관문을 뚫고 최종 2명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씨는 “여대라서 그런지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며 “장학금 같은 실질적인 혜택은 그리 많지 않지만 경력에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 응시했다”고 말했다. 23일 졸업식을 치르는 이씨는 지난해 11월 외교통상부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한양대 2학년 용주현씨(20·교육공학과)는 지난해 11월 1주일간을 꼬박 매달린 끝에 홍보도우미 ‘사랑 한대’ 2기에 이름을 올렸다. 용씨는 파워포인트로 학교홍보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1기 선배와 함께 면접 대비에도 공을 들였다. 최종 경쟁률만 5대 1이었지만 오랜 노력 덕분에 통과할 수 있었다. 용씨는 “장학금을 받는 것도 좋지만 학교의 얼굴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건국대 홍보도우미 ‘건우, 건희’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현씨(20·경영학과 2년)는 학교 입학과 동시에 홍보도우미를 준비했다. 이씨는 “홍보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쪽 경력을 쌓는 데는 홍보도우미만한 것이 없다”며 “대학 홍보도우미 활동이 졸업 후 취업활동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숙명여대 홍보실 김주영 대리는 “학교 홍보모델은 1997년 숙명여대가 처음 도입했는데 SBS 아나운서 윤현진씨(29)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며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높아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진수기자〉

“대학등록금 버금가는 유치원비… 말이 되나요?”

 

 

 

맞벌이 주부 황보말순(35·경기도 안양시)씨는 요즘 다섯살배기 아들 유치원 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 한달 기본 수업료만 20만원. 여기에 급식비, 교통비, 영어교육비, 학기재료비, 종일반 추가비용까지 합하면 매달 43만원을 유치원에 쏟아 부어야 한다. 1년간 10개월을 내야 하니, 대학으로 치면 1학기당 215만원의 등록금을 내는 셈이다. 황보씨는 “악기나 외국어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면 또 다른 추가비용이 붙는다”며 “내가 버는 돈은 대부분 아이 교육비로 나가고 있는 사정이라, 둘째 아이 가질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사립유치원, 국공립의 4배

경기도내 사립유치원 수업료가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조사한 2006년 공립·사립 유치원 수업료 현황에 따르면, 도내 사립유치원 평균수업료는 월 16만 9770원으로 조사됐다. 국공립 유치원 4만1600원(도시지역 기준)에 비해 4배 이상 비싼 수준이다. 도내 890개 사립유치원 중 월 수업료가 가장 비싼 유치원은 용인 A유치원으로 25만원이었다. 그러나 이 수업료는 급식비, 교재비, 행사체험비 등을 제외한 기본 수업료로 학부모들이 실제 부담하는 금액은 월 30만~40만원을 훌쩍 넘고 있다. 이는 연간 고교 수업료(130만원)의 2배, 웬만한 대학 등록금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주부 김영아(38)씨는 “사립 유치원이 너무 비싸 5~6세 연년생인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데, 보충수업료를 따지면 마찬가지”라며 “애들 교육비에 보태려고 학습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2004년부터 수업료 자율화

유치원 수업료가 고공행진을 시작한 건 지난 2004년 2월 도내 사립유치원 수업료가 자율화되면서부터다. 그 전까지 사립유치원 수업료는 ‘상한가’ 제한을 받았다. 시 지역은 월 13만5000원, 읍 지역은 13만원, 면·도서벽지는 12만5000원이었다. 1년에 인상할 수 있는 폭도 20% 이하로 제한돼 있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전국 대부분의 시도 교육청이 사립유치원 수업료를 자율화하자 2004년 2월부터 이 흐름을 따랐다. 그러자 유치원들은 해마다 수업료를 인상했다. 경기도 교육청 학교설립과 나학주 계장은 “사립유치원은 정부지원이 되지 않고, 수업료가 주된 수입원이라 이를 규제하면 교육환경 개선에도 한계가 있다는 게 교육계 전반의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유치원은 의무교육이 아닌데다, 교육시장 개방에 대비하려면 사립유치원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나 계장은 “수업료 외 기타 ‘수혜성 경비’를 책정할 때는 유치원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통보하지 말고 학부모와 협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립유치원 남아돌지만, 사립 유치원 몰려

그러나 문제는 아이를 저렴한 공립유치원을 보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사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유치원 환경이다. 지난해 도내 916개 국공립유치원에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3만1500여명, 904개 사립유치원에서는 10만1000여명의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았다. 유치원 수는 비슷한데, 3배가 넘는 아이들이 사립 유치원으로 몰린 것이다. 실제로 국공립유치원의 최대 수용가능정원은 4만 4000여명으로, 지난해 정원의 72%만 채웠다. 자리가 없어서 못 가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맞벌이 주부 박영신(37·용인시)씨는 “집에서 10분 거리에 병설유치원이 있지만, 귀가차량이 운행되지 않고 영어 교육도 시키지 않아 훨씬 비싼 사립유치원을 택했다”며 “아무리 저렴해도, 아이나 학부모에게 꼭 필요한 지원을 해주지 않으니 있으면 뭐하냐”고 했다. 실제로 정부에서 직영하는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들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등원·귀가차량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또 교육부가 정해놓은 교과과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미취학 어린이에 대한 영어 교육은 허락되지 않고 있다. 도교육청 유아교육담당 이신경 장학사는 “공립과 사립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며 “공립유치원에는 나라에서 검증한 우수한 교사가 있고, 교육 콘텐츠의 질은 여느 사립보다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류정기자 well@chosun.com]

다방 커피가 사라진 까닭은?

 

 

본디 모든 커피는 같았다. ‘다방 커피’였다. 커피 두 숟가락, 설탕 한 숟가락, 프림 두 숟가락에 약간의 뜨거운 물을 넣고 휘휘 저으면 그게 커피의 표준이 됐다.

지금 모든 커피는 다르다. 자바, 콜롬비아, 모카, 에스프레소, 라테, 캐러멜 마키야토…. 듣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종류도 많다.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이제 커피의 표준은 없다.

수평적 차별화와 수직적 차별화

커피라는 제품에 벌어진 현상을 경영학자들은 ‘극차별화’(hyperdifferenti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제품이 차별화되다 못해, 극단적으로 다양해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제품이 소비자 개개인의 기호에 가장 가깝도록 바뀌어가는 모양을 뜻한다.

농산물 시장은 대표적으로 극차별화가 시작되는 곳이다. 커피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지만, 다른 농산물도 조금씩 커피의 차별화 과정을 닮아가는 모양새다.

과거에는 사과도 배추도 한 종류만 갖다놓았지만, 요즘은 원산지별로 국산이다, 중국산이다, 타이산이다 하는 식으로 다른 제품들을 갖다놓는다. 여기다 유기농이다 친환경이다 하는 고급 카테고리도 만들어져, 다양성은 더욱 커진다. 같은 제품도 재배 방법에 따라 가격 차이가 꽤 난다.

서비스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일반우편과 등기우편, 속달우편 세 가지밖에 없던 우편 서비스를 보라. 일반우편, 빠른등기, 일반등기, 익일배송, 택배, 오토바이 퀵서비스, 트럭 퀵서비스 등 배송 수단이 아주 다양해졌다.

극차별화의 원인은 무엇보다 소득의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소득 증가는 두 가지 효과를 갖는다. 공급 측면에서는 소비 규모가 커지면서 다양한 제품 공급이 가능한 기반이 갖춰지고, 수요 측면에서는 소비자 기호 자체가 다양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수요 측면은 간단히 설명된다. 사람이 소득이 늘더라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의 절대량이 크게 늘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윳돈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일정 수준 이상 늘어난 소득 증가분은 상당 부분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에 사용되기 마련이다.

공급 측면은 좀더 복잡하다. 경제 전체로 봤을 때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커진다. 그러면 시장 규모가 커진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 시장 규모가 작을 때는 생존할 수 없던 틈새상품들이 생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다 쓰는 일반적 제품의 경우, 시장 규모가 작아도 어떻게든 시장에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시장의 소수가 좋아하는 기호품이나 마니아 제품들, 즉 틈새상품은 그렇지 않다. 시장 규모가 작으면 아예 생존하기 어렵다. 제품 하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최소 규모 시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 수요가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임계수준’을 넘어서기 전까지는 기업이 그 제품을 생산할 유인이 아예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유기농 농산물을 보자. 과거에도 부자는 있었으니, 유기농 농산물을 먹을 만한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유기농 농가나 전문 슈퍼마켓은 아예 발을 붙이지 못했다. 유기농 농산물을 더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할 의사가 있는 소비자군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 소비자들은 다른 소비자들처럼 값싼 일반 농산물을 먹어야만 했다. 아예 생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전체 소득이 늘어나면서, 유기농 농산물 수요가 임계치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소수이겠지만, 그래도 유기농 농가가 먹고살 수 있을 만한 수요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일단 생산자가 생기고 나니, 시장이 점점 더 속도를 받아 팽창하면서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극차별화 안에서도 종류가 있다. 수직적 차별화와 수평적 차별화로 나뉜다. 수직적 차별화는 한 제품이 고급과 대중 제품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앞서 든 유기농 농산물이 대표적 사례다. 기존 농산물이 그대로 있는 가운데, 더 비싸고 품질 좋은 유기농 농산물이 새로 나온 경우다. 품질이 상하로 나뉘기 때문에 수직적 차별화라고 한다.

수평적 차별화는 품질이 좋고 나쁜 게 아니라, 단지 제품 성격이 달라지면서 분화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커피가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커피’로 알고 있던 제품이 이제는 아라비카 커피다, 콜롬비아 커피다, 자바 커피다, 모카다 하는 식으로 분화된다. 이들은 품질이 좋고 나쁘거나 가격이 높고 낮은 것은 아니고, 그저 다양화되는 것이다.

미적지근한 다수 대신 마니아층을

극차별화가 진행되는 제품은,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제품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에릭 클레먼스 교수가 내놓은 결론이다.

클레먼스 교수팀은 업소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 맥주(craft beer) 시장을 연구했다. 미국에서 맥주는 극차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제품이라 연구 대상으로 선정됐다.

연구팀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소비자 제품 리뷰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수제 맥주의 경우, 특정 맥주에 대한 평가가 평균적으로 좋으냐 나쁘냐는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맥주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수록, 즉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양쪽이 모두 많을수록 그 맥주의 매출이 늘어났다.

극차별화가 진행되는 시장에서는, ‘안티’ 팬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대신 ‘마니아’층을 형성하라. 미적지근한 다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열광적인 소수가 제품을 먹여 살린다. 소수의 강한 만족에 소구하라. 이게 극차별화 시대의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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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timelast@hani.co.kr

조폭 얼룩진 태권도 암울한 스포트라이트

국기(國技) 태권도가 또 다시 암울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조폭 출신 대한태권도협회(대태협) 전 전무 박모씨(64)의 죄값을 치러야할 혐의가 보도됐기 때문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요인은 거물급 조폭 출신이라는 것. 검찰은 박씨가 전남지역 폭력배 대부로 꼽힌다고 했다. 실제 그는 국내 조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유명세가 상당하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 정윤기)는 지난 1월29일 폭력배 등을 동원해 대태협 임시이사회와 협회장 선거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박씨를 구속했다. 이와 관련 ‘태권도정보연구소’신성환 소장은 “권선징악”이라고 대뜸 말했다. 그리곤 “착한 사람은 복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이 대태협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아울러 “사법부의 옳고 그름의 판결 못지 않게 대태협을 멋대로 주물럭거리는 고위 간부들이 확실히 타산지석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무도 연마하는 태권도에‘주먹’웬말

박씨의 구속으로 이른바 대태협의 유명 조폭 출신 3인방 모두 법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씨와 함께 유명세를 날렸던 이승완씨 한용석씨 등 2명은 이미 관련 혐의에 대해 법원의 선고판결이 내려졌다. ‘3인방’이 죄값을 치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 2002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은 “거물급 폭력배들이 태권도협회를 좌지우지하면서 이권에 개입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적 이익을 추구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태권도인들이 “폭력배들은 태권도계를 떠나라”는 시위가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검찰은 태권도계에 조폭이 상당수 진출, 주요 요직을 독차지하고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내사를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당시 김운용 전 회장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협회장 선거에서 구천서 전 의원을 회장 후보로 옹립하기로 하고 폭력배 등을 동원해 상대 후보인 이모씨를 지지하는 대의원 등이 선거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해한 혐의다. 결국 수장에 올라선 구천서 전 회장을 비롯해 관련 인사들이 줄줄이 붙잡혔다. 하지만 박씨는 용케 빠져나갔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2003년 10월 외국으로 출국해 도피생활을 하다 지난달 15일 귀국했다.

박씨 혐의는 이 뿐만 아니다. 지난 2001년 10월 당시 김운용 대태협 회장이 임시대의원 총회에서 자신을 해임하려는 발언을 하려고 하자 태권도인 1백여명을 동원 “김운용은 물러나라”는 등의 고함을 지르고, 김씨의 차량을 부수는 등 임시이사회 개최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3년 10월 도피 지난달 15일 귀국

 

전남지역 폭력배 대부로 불리는 박씨는 조폭 역사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유명 인물이다. 그는 1970년대 서울 종로에서 ‘번개파’를 결성한 뒤 ‘호남파’와 연합해 1975년 사보이호텔 사건을 일으켜 명동의 ‘신상사파’를 제압한 거물급 조폭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와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를 휘하에 두고 서울을 장악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보이호텔 사건은 정통 주먹세계의 종말을 고한 상징적인 일로 남는다. 즉 이때까지 주먹세계의 불문율이었던 ‘정정당당한 주먹과 주먹의 대결구도’가 깨지고 사시미칼과 일본도라는 흉기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 이승완(67)씨 역시 혐의가 추가돼 처벌을 받았다. 태권도협회의 사무처리와 관련 업체로부터 5천7백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던 것. 대법원은 지난 2004년 12월9일 이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5천7백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태협서 2인자로 불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씨는 호남 조폭의 대부로 통하며, 전국구 주먹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거물로 평가된다.

용팔이 사건 주도, 대태협 2인자 막강

 

그렇다고 그가 태권도와 무관한, 아무런 관련이 없지는 않다. 고교 때 태권도 전국대회를 휩쓸었고, 해병대 태권도부 창단 코치를 맡아 대통령배 대회 5연패를 했을 만큼 선수로, 지도자로 재능이 남달랐다. 하지만 그는 무도인 출신의 정도의 길을 걷지 않고 주먹 대열에 들어섰다. 갈취만 일삼던 기존 폭력 조직과 달리 그는 주류도매상을 운영하면서 유흥업계를 장악했다. 경제적 기반에 이어 보호막이 돼줄 정계에 접근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일명 ‘용팔이 사건’이라고 불리는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고, 1988년에는 거물 폭력배와 운동 선수들을 모아 우익 단체를 표방한 ‘호국청년연합회’를 결성했다. 이에 맞서 이번에 구속된 박씨는 1천여명의 폭력배들을 모아 89년 ‘신우회’라는 전국 규모의 폭력조직을 결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씨는 조폭 선후배들 사이에 신망도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창 세력 쟁탈 전쟁을 벌이던 양은이파 조양은씨와 서방파 김태촌씨의 화해를 주선하기도 했다는 것. 한용석(67)씨도 충청지역 폭력계 대부로 불리는 거물급 조폭 출신이나 대태협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당시 불구속기소된 그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한씨는 1977년 발생한 속리산 카지노 사건으로 이 고문과 함께 처벌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이나 입김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 일선 태권도 관장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무도인 자존심 무참히 짓밝아

 

한편 수년 전 제기된 ‘조폭, 태권도 접수’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태권도정보연구소’신성환(48) 소장은 안타까워했다. 그는 조폭 출신 거물급 인사들이 태권도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오랫동안 지속된 김운용 독재체제의 부정적 유산이라고 씁쓰레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태권도계 인사는 “누가 조폭들을 데리고 왔겠느냐”고 반문한 뒤 “당연한 상상에 맡기겠다”고 했다. 곧이어 “사실 능동인지 수동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잘못된 인사의 책임에선 결코 면피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도인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는 이유에서다.

신 소장은 “태권도의 최고 상위기관에서 여전히 잘못된 행위가 뻔뻔하게 자행되고 있다”면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해도 시정되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겹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실제 그는 오래 전부터 분노의 목소리를 외쳤음에도 여전히 개혁의 변화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태권도계의 어제를 혼탁, 오늘은 안개라고 표현했다. 내일에 대해선 오늘을 잘 극복하면 맑음으로 변할 수 있지만, 솔직히 작금의 현실을 보면 깜깜, 그 자체라고 손사래쳤다. 신 소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태권도는 그냥 무술이 아니다. ‘인성교육과 건, 지혜의 무도’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태권도의 최상층부에 범법자들이 우글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느냐, 하루 빨리 태권도가 올곧은 길로 갔으면 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불안한 태권도 앞날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이 설립된 태권도는 1988년 서울올림픽 시범 종목으로 채택됐지만 정식 종목이 된 것은 12년 후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명실상부한 세계적 스포츠로 자리 잡았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금메달 밭’으로 불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퇴출론에 시달리며 불안한 형국이다. 다행히 적잖은 반대에도 불구 명맥을 이었고 2012년 올림픽에도 정식 종목으로 남게 됐다. 문제는 태권도 종주국 한국의 폐쇄성과 지루한 경기방식에서 비롯된 흥행성 부족이 번번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태권도의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 ‘글로벌 리더십’발휘나 제도적 장치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요시사 성강현기자ㅣ스포츠서울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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