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재구성]
평범한 직장인 김아무개(42)씨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성추행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구속됐다.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355일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결국 항소심에서 무죄임이 밝혀지고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지만,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은 뒤였다.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 사건 관계자들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을 재구성해 본다. 한 시민을 억울한 고통 속으로 몰아간 구조적 원인들을 들춰보기 위해서다.
2003년 9월23일 오후 한양대병원에서 진료 예약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김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경찰서입니다. 미아 신고하신 것 때문에 좀 와주셔야겠습니다.”
‘아이들을 찾은 건가?’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아들 완(6·가명)이와 딸 원(5·가명)이가 사라진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외국 출장이 잦은 김씨는 당시 방콕에 있었다. 호텔방에 짐을 푸는데, 같이 사는 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유치원에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아 알아보니 유치원에도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귀국한 김씨는 부인과의 이혼소송을 위해 선임한 변호사를 통해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인이 법원에 이혼 청구 취지를 바꾼 반소장을 냈는데, 소장은 ‘원고는 아이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1년 반 전 집을 나간 부인은 이혼소송 과정에서 친권과 양육권은 다투지 않겠다는 태도였는데, 갑자기 친권 행사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등굣길에 아이들을 데려간 것도 부인이었다.
미아신고했는데 알고보니 아내가 몰래 데려가
김씨는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경찰서에 도착했다. 1층 여성·청소년계 사무실로 들어가자 형사들이 입구 쪽을 막아섰다. “김○○씨, 당신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긴급체포합니다.”
☞문제점 1: 인신구속을 위한 편법 (하단 참조)
김씨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등 경찰관의 말은 계속 이어졌지만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급한 대로, 이혼소송을 맡고 있는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그를 기다리며 생각을 정리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시간이 지나 도착한 변호사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들도 전문가인데, 증거 없이 엉터리로 사람 잡아넣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변호사도 김씨를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변호사만 오면 풀려날 줄 알았던 김씨는 절망스러웠다. 변호사를 돌려보낸 뒤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문제점 2 초동수사 단계에서 변호인의 조력 (하단 참조)
“이런 변태, 빨리 불어” 소리치며 다그쳐
“아이들을 추행한 사실이 있나요?”, “아이들은 2001년부터 성적인 학대를 받았다고 하던데….”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형사의 질문이 잇따랐다. “절대로 그런 적 없습니다. 아이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씨가 계속 부인하자 간부로 보이는 여성 경찰관이 소리쳤다. “이런 변태, 빨리 불어!”
김씨가 긴급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은 누이는 수소문 끝에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 수임료 770만원에 석방을 조건으로 2천만원을 더 냈다. ‘전관’의 힘이었을까. 김씨는 이튿날 저녁 풀려났다. 검사가 경찰에 보강 수사를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검사 보강수사 지시로 풀려난 뒤 “아빠 무서워요” 전화
26일 오후 5시, 경기 ○○시 변호사 사무실에서 상담하던 김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무서워요. 빨리 나 데리러 오세요.”
완이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완이는 일산의 어느 가게 공중전화에 있다고 했다. 김씨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시속 150㎞로 달렸다. 일산 롯데백화점 앞에서 열흘 만에 다시 만난 아들은 울며 김씨에게 안겼다. 완이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이모가 시켜서 고추장난했다고 거짓말했어요”
“×× 이모가 시켜서 경찰서에 가서 ‘아빠랑 고추장난 했다’고 거짓말했어요. 이모가 무서워서 거짓말했어요. 이모랑 같이 병원에 가서 종이에 글씨를 쓰는데 이모가 시키는 대로 쓰지 않는다고 화내서 몰래 나왔어요.”
부인과 부인의 언니, 그리고 이들의 친구인 ××의 손에 이끌려간 아이들은 매일 ××한테서 경찰서와 병원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했다. 이날은 병원에서 심리검사 질문지에 답을 적는데, 소원이 뭐냐는 물음에 ‘아빠에게 가고 싶다’라고 썼다가 옆에서 지켜보던 ××에게 혼이 나 몰래 빠져나왔다는 것이었다.
“아빠, 원이도 데려와야지.” “그래. 그러려면 앞으로 절대로 거짓말하면 안 된다.” 김씨는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문제점 3 : 구멍난 피해 어린이 보호
자청한 거짓말탐지기 검사 15분만에 ‘거짓’ 판정나 구속
29일 오후 1시, 김씨는 경기경찰청을 찾아갔다. 처음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스스로 요청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는 결백을 밝힐 기회라고 믿었다. 검사관이 조사실에 들어왔다. 기계의 원리와 정확성에 대한 설명이 1시간 넘도록 이어졌다. 이어 김씨의 가슴과 배, 손가락에 장치가 감겼다. 성추행에 대한 질문엔 15분이 걸렸다. ‘거짓’ 반응이 나왔다.
☞문제점 4 : 거짓말탐지기의 정확성
10월6일, 김씨는 결국 구속됐다.
‘못믿을 법정’…진실 이겼지만 불신과 상처만
2003년 11월 이아무개 변호사는 서울변호사회관에서 당직변호사로 무료 법률상담을 하다가 김씨의 둘째누이를 만났다. 그는 “애초 선임한 변호사가 동생의 결백을 믿지 않고 자백을 권한다”며 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아달라고 매달렸다.
☞문제점 5 : ‘변호사, 너마저…’(하단 참조)
애초 변호사, 결백 믿지않고 자백 권해
수사 기록을 검토하던 이 변호사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딸 원이가 처음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을 때는 없던 상처가 일주일 뒤 경찰병원 진찰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미 김씨와 떨어져 있을 때 상처가 생긴 셈이었다. 또 완이의 9월25일치 진료 기록에는 ‘오늘 목, 일요일까지 당함’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일요일은 완이가 이미 ×× 이모 등과 함께 있을 때였다. 완이가 탈출한 뒤에 한 이야기와 맞아떨어졌다.
12월16일 오후 4시 수원지법에서 김씨의 3차 공판이 열렸다. 완이와 원이를 진료한 ㅇ병원 신경정신과 ㅅ 과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이 변호사는 증인 신문을 해 나갔다.
수사기록 검토하다 아이와 떨어져 있을 때 난 상처 확인
“지난 12월4일 원이에 대한 진료를 그만두신 이유가 뭐죠?”
“원이가 그전까지는 아버지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이날 놀이치료에서 이상하게 예전과 달리 표정이 어둡고 긴장돼 보였어요. 상담 선생님이 이상하게 여겨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원이가 갑자기 ‘아빠가 고추놀이 했어요’라고 말했어요. 놀라서 ‘오늘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엄마가 시켰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이런 식의 치료가 아이한테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이 진료한 의사 “아이가 ‘엄마가 시켰다’고 했다” 증언
김씨 부인 쪽이 원이에게 거짓말을 강요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 변호사는 ‘거의 다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재판장이 갑자기 방청석에서 손을 든 아이들의 이모에게 발언권을 줬다.
‘이건 무슨 일이야? 증인도 아닌 사람한테 이렇게 발언권을 줄 수도 있나?’
이 변호사가 생각하는 사이, 아이들의 이모가 일어나 말했다.
재판장 방청석에 있는 이모에게 느닷없이 발언권 줘
“제가 원이에게 ‘너 이모랑 엄마랑 있는 데서는 아빠 이야기를 그렇게 하면서 왜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면 아빠 이야기를 흐리냐’고 했더니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음 치료에 가면 선생님이 물어보면 있는 대로 다 이야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이어 재판장은 이 변호사가 완이의 성기에 난 상처가 포경수술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에 대해 병원에 사실조회를 신청한 것도 배척했다. 2차 공판에서 이미 증인으로 채택한 경찰병원 의사들에 대한 증인신문도 취소했다. 다음 재판 날짜를 잡으면서 재판장이 한 말에 이 변호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차피 구속기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시간은 충분하네 ….”
사실조회 배척하고 증인신문 취소…법관기피 신청 기각
이 변호사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법관기피 신청을 냈다. 그러나 법관기피 신청은 항고와 재항고를 거쳐 결국 넉달 만에 최종적으로 기각됐다. 그리고 계속된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2004년 7월 김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문제점 6 : ‘있으나 마나’ 법관기피 신청 제도
2004년 9월22일 이른 아침, 갈색 수의를 입은 김씨는 안양교도소 앞마당에 다른 수감자들과 나란히 섰다. 손목에 수갑 2개가 채워졌고, 상체는 포승줄에 감겼다. 3명씩 굴비처럼 엮여 법원으로 가는 호송차에 실렸다. 이미 법에 대한 믿음은 모두 잃은 상태였다. 버스가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 도착했다. 항소심 선고가 있는 날이었다. 재판장 왼쪽에 앉은 판사가 얼굴을 찡그린 채 서류를 읽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항소심서 추가증거 없는데도 무죄…1년만에 석방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김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뒤를 돌아보니 가족들과 회사 동료들, 다른 사건 때문에 온 방청객들까지 자리에서 일어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1심에서 제시된 증거 외에 추가된 증거는 없었는데도, 항소심 재판부는 이것만으로도 무죄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기까지는 꼭 2년이 더 필요했다.
☞문제점 7 : 검찰은 웬만하면 항소?
그리고 지난 1월에야 4년을 끌어온 이혼소송이 마무리됐다. 두 아이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인정받았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국가는 형사보상금 3550만원을 건네는 것으로 모든 책임을 벗었다.
☞문제점 8: 억울한 구금에 대한 보상은?
2년 더 지나 대법 확정판결 받고 친권·양육권 되찾아
2007년 3월6일 새벽, 김씨는 전북 ○○시로 차를 몰았다. 처가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니, 여자아이가 나왔다. 쑥쑥 클 나이에 한참을 못 봤으니 먼발치에서는 딸이 맞는지 확신이 안 섰다.
“원아, 원이 맞니?”
아이가 김씨를 돌아봤다. 몰라보게 자랐지만 이목구비는 그대로였다. 아이는 잠시 경계하더니 이내 아빠 품에 안겼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경찰서로 부른뒤 ‘편법체포’…법관기피 신청 해봐야 거의 100% 기각
문제점 1: 인신구속을 위한 편법
경찰은 아이들을 찾으려는 김씨의 다급한 마음을 이용해 경찰서로 불러들인 뒤 갑자기 체포하는 속임수를 썼다. 이런 수법 자체가 불법은 아니어도, 인권 침해의 여지가 있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별건 구속’이라는 수사 관행도 피의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마약 거래처럼 중대한 혐의에 대해 구속할 정도로 증거를 수집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미 증거가 확보된 폭력 등 경미한 사건으로 먼저 구속한 뒤 중대 혐의를 추궁하는 식이다.
법원은 이런 수사 관행을 아직까지 적법하다고 보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위법이라는 학설이 대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송호창 변호사는 “별건 구속을 당하면 피의자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아무런 준비를 할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변호사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점 2: 초동수사 단계에서 변호인의 조력
김씨는 이미 선임한 변호사가 있으면서도 경찰에서 변호사의 도움 없이 조사받았다. 초동수사 과정에서 변호사가 입회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돼 있지만 대다수의 피의자들은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거나 기소가 이뤄진 뒤에야 변호사를 선임한다. 김형국 서울서부지법 국선전담 변호사는 “마치 변호사를 부르는 것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신태영 단국대 교수(법학)는 “변호인이 조사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 검사나 경찰관의 의도를 파악해 필요한 해명자료를 내는 등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며 “특히 무죄를 다투는 사건은 초기 단계부터 변호사를 참여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갑자기 체포돼 법률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야간과 주말에 6명의 당직변호사를 두고 있다.
문제점 3: 구멍난 피해 어린이 보호
이 사건에선 김씨와 부인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양쪽이 아이들을 한 명씩 데리고 있으면서, 서로 상대방이 아이들을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두 아이 중 한 명은 추가적인 피해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는 뜻이다. 수사기관이 어린이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면 우선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놓았어야 옳다.
이런 경우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의뢰하면 아이들을 일시적으로 부모로부터 분리해 보호할 수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서태원 교육홍보팀장은 “아이들의 안전에 문제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아동복지법에 따라 전문기관에서 일시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며 “이 사건의 경우 부모의 영향력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보호·치료할 때 제대로 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점 4: 거짓말탐지기의 정확성
수사기관 종사자들은 거짓말탐지기 조사로 진술의 참·거짓 여부를 97%는 판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거짓말탐지기가 정확성을 발휘하자면 충족돼야 할 조건이 있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는 “거짓말탐지 조사는 1시간30분 정도의 사전면담 과정이 중요하다”며 “이때 조사 대상자의 흥분상태를 안정시켜야 하고,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을 밝혀내 벌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당신의 억울함을 이 조사를 통해 풀어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심장·정신질환을 앓는 사람 등은 거짓말탐지 조사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김씨는 어머니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고, 업무 특성상 심장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였다. 법원은 거짓말탐지 조사 결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지만, 수사기관이 쉽게 심증을 굳히는 근거가 되는 점이 문제다.
문제점 5: ‘변호사, 너마저…’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김씨는 세 차례나 변호사를 바꿨다. 매번 크게 싸웠다. 무죄를 주장하는 자신을 믿지 않고 자백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다.
이민호 변호사는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워낙 적기 때문에 검사가 기소하면 변호사들도 대부분 유죄라고 생각한다”며 “오랫동안 힘들게 싸우느니 적당히 합의와 자백을 유도해 선처를 기대하자는 식으로 의뢰인을 설득하는 변호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또 “특히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브로커가 개입하는 경우 신뢰가 형성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점 6: ‘있으나 마나’ 법관기피 신청 제도
형사소송법 제18조는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검사 또는 피고인이 법관의 기피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하기 힘들다. 신청과 동시에 재판이 중단돼 구속기간이 늘어날 뿐 아니라, 신청이 기각되면 훨씬 불리한 상황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청을 하더라도 받아들여지는 일은 더더욱 드물다.(그래프 참조) 배금자 변호사는 “법관기피 신청의 기각률이 100%에 가깝다는 것은 우리나라 법원이 무오류의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며 “판사들이 기피 신청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매우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찍힐까봐’ 아예 기피 신청을 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법학)는 “판결에 대한 국민의 승복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법관들이 기피 신청을 지금보다 폭넓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점 7: 검찰은 웬만하면 항소?
한때 검찰의 항소와 상고는 관행이었다. 검찰 출신인 백형구 변호사는 “최근에는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무죄 판결이 나거나 선고된 형량이 구형한 것의 절반에 못미치면 검사가 무조건 항소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말했다. 검사의 자존심 때문에 피고인의 고통이 불필요하게 오래 계속된 것이다.
김일수 고려대 교수(법학)는 “1심과 2심에서 증거 조사가 모두 끝나고 검찰과 법원 사이의 법적인 견해 차이가 모두 드러났는데도 검사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상고하는 경우가 있다면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점 8: 억울한 구금에 대한 보상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죄없는 사람이 감옥에 갇혔을 때 형사보상금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형사보상법은 보상의 최대 한도를 최저임금법상 하루 급여의 5배로 정하고 있다. 김씨는 갇혀 지낸 355일에 대해 하루 10만원씩 모두 3550만원을 받았다. 법적 한도액을 거의 다 받은 것이지만, 김씨의 연봉 7천만원의 절반밖에 안 된다. 더구나 재판 과정에서 든 변호사 선임비용 8천여만원에도 한참 못미친다.
김일수 교수는 “형사보상금 제도는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람들의 손해를 보전해줄 수 있는 좋은 제도지만 현재 액수는 상징적인 의미밖에 없다”며 “국가의 잘못된 형벌권 행사로 입은 상처를 실제로 치유할 수 있도록 액수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신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