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00가구가 넘는 인천 C아파트에 2011년 7월 경리 직원 A씨가 채용됐다. A씨는 일을 시작한 지 3주 만에 공금에 손을 댔다. 이사 가는 주민이 20일치 관리비를 미리 정산해 맡긴 41만1860원이었다. 이사 철인 9월이 되자 9가구가 맡긴 423만6900원이 A씨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A씨는 아파트 회계 프로그램엔 '결손 처리(돈을 받을 수 없다는 뜻)'로 입력했다.

 

↑ [조선일보]서울 한강변 아파트가 안개에 휩싸여 있다.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1000만호(戶), 거주자 3000만명’ 시대가 몇 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연간 12조원이 넘는 아파트 관리비 회계는 고장 난 감사 시스템 때문에 짙은 안갯속,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성형주 기자

 

↑ [조선일보]

 

이런 돈 말고도 관리사무소 통장에는 이사 간 주민들이 착각해서 더 낸 관리비가 있었다. 관리비 자동이체를 해지하지 않아 들어온 돈이다. A씨는 70여 가구에 1507만7620원을 돌려준 것처럼 회계 프로그램에 기록했지만, 실상은 착복했다.

C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매달 관리비 결산 서류를 들여다봤지만 A씨의 횡령 사실을 적발하지 못했다. 동대표 가운데서 뽑는 아파트 감사(監事)는 기초 회계 지식이 없었다. A씨가 취직한 지 8개월 만인 작년 3월 외부 회계 법인이 아파트 회계 프로그램과 장부를 맞춰보자 A씨가 2672만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2.

 

올 초 서울 B아파트 주민들은 외부 회계감사(監査)를 받기로 했다. 입주자대표와 관리소장은 갖가지 이유를 대 미뤘다. 하지만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감사를 이끌어냈다. 2년치 회계 자료를 분석하는 조건으로 회계 법인에 70만원을 주기로 했다.

 

주민들은 감사 첫날 아파트에 온 회계 법인 직원에게 "작은 문제도 지나치지 말고 제대로 감사해 달라"며 자체 조사한 내용을 건넸다. 그런데 직원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복잡한 일에 휘말리기 싫다"며 자리를 떴다. 주민들의 외부감사 시도는 이걸로 끝났다.

'고장 난 감사 시스템'도 아파트 관리비 비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아파트 주민 중 선출하는 감사는 일부 비리 입주자대표와 결탁해 눈을 감는다. 설혹 비리를 고발하고 바른 소리를 해도 '왕따'가 되기 일쑤다. 회계 관련 지식이 없는 감사는 한마디로 '봐도 모른다'. 관리비 통장 입출금만 맞춰보는 형식적인 감사를 할 수밖에 없어 '관리비 횡령'이 일어나더라도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감사원이 서울시 1258개 단지를 표본조사한 결과 매년 외부 회계감사를 받은 곳은 70개 단지(5.6%)에 불과했고, 709개 단지(56.3%)는 최근 3년간 한 차례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 부담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 회계 법인에 맡겨도 큰 소득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파트의 최고 권력자인 입주자대표 눈치를 보느라 엉터리 감사 보고서를 만들어내는 회계 법인도 있기 때문이다. 회계사 업계에선 이런 보고서를 '붕어빵 감사 보고서'라고 부른다.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에선 재작년 처음으로 외부 회계감사를 받았다. 입주자회의가 의결했다. 비용은 40만원이 들었다. 아파트 회계감사를 하려면 서류 분석 등에만 2~3일은 걸린다. 통상 회계 법인 직원이 2명 정도 나와서 직접 영수증 등을 뒤져보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감사 보고서에는 공인회계사가 도장을 찍어야 한다. '40만원짜리 감사 보고서' 작성 과정에선 이런 과정이 상당 부분 생략됐다. 수박 겉핥기식 감사였던 것이다.

이렇게 작성된 보고서는 입주자대표와 관리소장의 '면죄부(免罪符)'로 활용됐다고 일부 주민은 말했다. 한 주민은 "회계 법인이 '적정' 의견을 낸 감사 보고서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권용찬 회계사는 "일부 부도덕한 회계 법인은 아예 관리사무소가 이메일로 보내 준 회계 자료를 통째로 붙여서 감사 보고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며 "같은 회계사로서 부끄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붕어빵 감사 보고서'를 만들어 내는 회계 법인에도 '이유'는 있다.
다음에도 일감을 따내려면 입주자대표나 관리사무소의 신경을 거슬러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한 회계 법인 관계자는 "감사 보고서에 모든 것을 다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곧이곧대로 관리비 비리 문제를 감사 보고서에서 지적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곤욕을 치른 회계사도 있었다. 몇 년 전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를 감사하면서 하자 보수금 14억원이 부당하게 쓰인 사실을 지적했던 회계사 K씨는 "관리소장이 주변 관리소장들이나 협회에 음해하는 바람에 한동안 아파트 회계감사 일감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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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의 아파트 관리비 새고 있진 않나요 [6]

[주민 울리는 아파트의 무법자들… 쫓아내기도 쉽지 않다]
구청 '재선거 지시'에도 불복, 소송 낸 후 계속 권한 행사
주민들이 직접 해임 결의해도 순순히 물러나는 경우 드물어
장기 집권 '직업 棟대표'들 終身규정 등 제멋대로 만들고 비리 연루되고도 또 출마


서울 강북구 대형 단지인 S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장인 K씨는 요즘 강북구청과 소송을 진행 중이다. 강북구청은 지난 3월 입주자대표회장이 된 K씨에 대해 '무자격자'라면서 이 아파트에 회장을 다시 뽑으라는 공문을 보냈다.

K씨는 2006~2008년 한 차례 이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장(임기 2년)을 지내고, 2010년부터 다시 회장을 연임하고 있다. 강북구청에 따르면 K씨는 지난 2008년 법을 어기고 아파트 복리시설을 골프연습장 업자에게 돈을 받고 임대한 혐의(체육시설법 위반)로 기소돼 2년 후인 2010년 1월 대법원으로부터 벌금 100만원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국가기관이 적발한 서울 강북구 S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K씨의 문제들
 

/그래픽=박상훈 기자

강북구청은 이처럼 아파트 관리와 관련한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입주자대표를 할 수 없다면서 '재선거 지시'와 함께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했다. 국토부도 "K씨는 입주자대표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K씨는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5년간 입주자대표를 할 수 없게 한 주택법 시행령은 내가 확정판결을 받은 이후에 생겼기 때문에 소급 적용할 수 없다"며 강북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K씨는 "입주자대표 출마는 기본권에 해당해 헌법상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제한할 수 없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5년 넘게 입주자대표회장을 하고 있는 K씨의 불법행위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감사원은 2011년 골프연습장 외에도 아파트 헬스장과 독서실을 돈 받고 임대한 사실을 적발해 강북구청에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도봉세무서도 임대 수익에 따른 부가가치세를 탈루했다며 3344만원을 추징했다.

관할구청은 물론 국토부, 감사원, 세무서 등 국가기관들이 돌아가며 문제 삼았는데도 꿈쩍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도리어 K씨는 구청의 '재선거 지시' 이후 기존 청소·조경·승강기 업체와 2~5년간 재계약을 하는 등 권한을 부당하게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K씨는 "임대 사업 수익을 신고하지 않는 것은 전국 아파트가 다 마찬가지"라며 "법원에서 판결을 내릴 때까지 내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법대로 하라"며 버티기

비슷한 케이스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민들이 입주자대표회장 또는 동대표들의 비리를 찾아내 '해임 결의'를 해도 선선히 물러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소송으로 해결하자"고 나온다는 것이다.

경기도 양주의 한 아파트에선 입주자들이 회의록 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동대표를 해임시켰다. 해당 동대표는 아파트 입주자회의에서 총무를 하면서 보관하던 통장 등을 후임에게 인계하지 않아 문제가 됐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가 법원에서 패소했다. 서울 서초구의 S아파트 전직 입주자회장 홍모씨도 장애인 이동용 경사로 설치 공사와 관련한 주민 회의록을 위조한 것이 들통나 주민들에 의해 회장직에서 밀려났지만, '억울하다'며 법원에 소송까지 냈다가 지난 3월 말 패소했다.

◇'직업 동대표'가 멋대로 만드는 관리 규약

주민들은 입주자대표들의 비리를 적발해도 이들을 축출하기 어려운 것은 "이권(利權)으로 얽히고설킨 비리 사슬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씩 동대표를 맡는 이른바 '직업 동대표' 몇몇이 주민대표 선출규정(관리규약)을 자기들 유리하게 뜯어고쳐 돌아가면서 아파트의 권력을 장기 집권하는 경우엔 주민들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감사원이 서울시내 100개 아파트를 표본조사 한 결과 15개 아파트에서 공사를 맡은 업체와 관련된 사람이 동대표를 할 수 있게 하거나, 65세 이상만 동대표를 할 수 있게 관리규약을 만들었다가 적발됐다. 자신들이 '종신(終身)' 동대표를 할 수 있게 관리규약을 만들고 공사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감사원이 수사 의뢰했던 서울 노원구 J아파트 동대표 4명 가운데 2명이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최근 다시 동대표로 출마하면서 아파트에서 분란이 일고 있다.

 

[강남구 28개 단지, 2008~2009년 전기료 22억원 낭비]

- 住民 모른다고 무책임하게 계약
한국전력과 비싸게 계약한 곳 監査 해보니 서울 40% 넘어
관리소들 "더 걷힌 전기료로 공용 전기료 줄여줬다" 해명
경기 안성 住民, 반환訴 승소 "가구당 최대 19만원 지급하라"


#1. 임대아파트인 부산 기장군 정관휴먼시아 1단지(1533가구) 주민 460여명은 최근 법원에 "부당하게 더 걷은 전기요금을 돌려달라"며 임대 주체인 LH와 주택관리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을 낸 주민들이 돌려달라는 전기료는 1인당 25만원씩, 총 1억1000여만원이다.

이 아파트는 가구별 전기 사용량과 공용 사용량 구별 없이 단일 요금 방식으로 계약하는 것이 가구용과 공용을 구분해 매기는 종합 계약 방식보다 가구당 월 8000원가량씩 전기료가 싸게 먹힌다.


		9일 부산 기장군 정관휴먼시아 1단지 동대표 권명자(오른쪽)씨가 2009년 입주 때부터 최근까지 낸 전기요금 내역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9일 부산 기장군 정관휴먼시아 1단지 동대표 권명자(오른쪽)씨가 2009년 입주 때부터 최근까지 낸 전기요금 내역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그런데 주택관리공단은 값싼 단일 계약을 하고도 주민들에게는 약 6개월간 그보다 비싼 종합 계약을 했다고 속여서 전기요금을 징수하고는 차액을 빼돌린 게 아니냐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소송에서 주민들을 대리하는 김병진 변호사는 "전기요금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사용량만큼 계약 단가대로 부과해야 하는데, 주택관리공단이 다른 단가를 적용해 부과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고의적으로 주민들을 속였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 측은 "남은 돈으로 공용 전기료(가로등이나 엘리베이터 등에 사용되는 전기료)를 면제하거나 깎아줬다"며 "단일 계약 방식은 전기를 많이 쓰는 일부 가구가 상대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어서 주민이 골고루 혜택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2. 서울 강남의 R아파트 단지는 지난 2월 전기요금 검침비(檢針費)를 감사했다. 이 아파트에선 중앙 처리 시스템으로 자동 검침이 이뤄져 한국전력으로부터 월 100만원 안팎의 검침비가 아파트 통장으로 매달 들어온다. 그런데 2009년부터 한전이 지급한 검침비 4000여만원을 당시 관리소장 등이 인출해 간 것으로 자체 감사에서 밝혀졌다.

 

감사를 한 주민 최모(공인회계사)씨는 "검침비는 아파트 수입이기 때문에 입주자회의 허락을 받아야만 지출할 수 있다"며 "무단 인출해간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전직 관리소장 등을 경찰에 고발했다.




		2008, 2009년 전기요금 이만큼 더 냈다 도표
 



2008, 2009년 전기요금 이만큼 더 냈다 도표

아파트 관리비 가운데 가장 큰 비중(27.5%)을 차지하는 것이 전기요금이다.

연간 전체 아파트 관리비 12조원 가운데 3조원 이상이 전기요금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요금 부과 방식에 대한 주민들의 무지(無知), 이를 악용한 일부 관리 주체의 눈속임 비리로 안 내도 될 돈이 줄줄 새고 있다.

2011년 감사원 감사 결과 서울 시내 817개 단지 중 340개(41.6%) 단지가 전기 공급 계약 방식을 잘못 택해 2년간 전기요금 161억원을 더 낸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단지에선 관리사무소가 "번거롭다"며 더 싼 방식으로 변경하지 않아 주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감사원은 말했다. 경기도 안성과 부천에선 주민들이 관리 회사를 상대로 '전기료 반환 소송'을 내서 승소하기도 했다.

 

지난해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안성의 아파트 입주민 20여명이 낸 소송에서 "가구당 17만~19만원과 연체료 손해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기요금을 산정하는 방법을 변경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아 4년간 5800여만원을 부당하게 쌓아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수동 검침이 이뤄지는 아파트에서는 관리사무소 등이 검침을 하면서 가구별 사용량을 부풀려 전기요금을 더 걷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갖는 주민이 적지 않다.

하지만 관리사무소 관계자들은 "검침을 조작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말"이라며 "더 걷히는 전기료가 있을 땐 공평하게 주민들의 공용 전기료 부담을 줄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주민 편의시설·입주자대표회의… 곳곳서 관리비 유용]

- 감독해야 할 입주자대표가…


쓸데없는 회의 명목 만들어 회의비 타간다는 민원 줄이어 서울 1258개 아파트 단지 중 5.6%만 매년 외부 회계감사

- 어느 아파트 헬스장


장부엔 3년간 4만장 구입 기록… 남아있는 타월은 8500장뿐 사무소 직원, 일부 무단 유출도



	아파트 관리비는 어떻게 구성되나 그래프

서울 강남의 B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이었던 방모(65)씨는 최근 회장직에서 해임됐다.

해임 이유는 '물품 대금 결제를 거부하는 등 아파트 관리 업무 진행에 훼방을 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씨는 자신이 회장을 하면서 관리비 횡령 등 아파트의 비리 문제를 들춰내는 것을 꺼린 쪽에서 주도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는 작년 2월 회장이 되자마자 아파트 관리 업무에 대한 내부 감사를 벌였다고 한다. 본지가 입수한 감사 자료에 따르면 증빙이 없는 지출이 상당수 발견됐다. 방씨는 특히 관리비로 운영되는 주민 편의 시설의 소액 지출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보수공사나 경비·청소비처럼 수억~수천만원씩 되는 덩치 큰 지출만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도 관리비가 줄줄 새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민 이용 헬스클럽 타월, 어디 갔나 봤더니…

방씨와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아파트 주민 편의 시설 내 커피숍은 2011년 1억6100여만원어치 물품을 구입했다고 회계장부에 기재했다. 하지만 이 중 2900만원가량의 거래명세서가 없었다고 한다. 예컨대 회계장부에는 그해 3월 1670만원어치 물품을 구입했다고 돼 있지만 실제 거래명세서는 500여만원어치뿐이었다는 것이다. 방씨는 "아이스크림 구매비와 판매 실적을 맞춰보니 150만원이 비길래 추궁했더니 '(그 아이스크림은) 직원들끼리 먹었다'고 답하더라"고 말했다.

헬스클럽에서 쓰는 타월 행방이 묘연했다. 회계장부에는 지난 3년간 4만1900장을 구입했다고 돼 있지만 남은 타월은 8500여장밖에 없었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래픽=이철원 기자

그런데 이 아파트 주민이 경기도 일산의 다른 아파트에 갔다가 그곳 헬스클럽에서 B아파트 헬스클럽 로고가 찍힌 타월을 쓰고 있는 것을 목격해 방씨에게 신고했다. 조사해보니 2010년 9월 관리사무소 직원이 입주자회의의 허락 없이 타월 500장을 무단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직원은 "빌려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빌려준 타월을 1년이 지나도록 돌려받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타월 세탁업체 대표가 "뒷돈을 요구해 주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주민 편의 시설 직원 K씨를 형사 고소한 일도 있었다. K씨는 해고됐다.

이에 대해 현 입주자회장인 L씨는 "아이스크림이나 타월 유출문제는 사실이지만 있을 수 있는 실수여서 배상시켰다"며 "커피숍 거래명세서가 없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 유흥비, 일하지도 않는 선관위 활동비로도 줄줄

관리비의 올바른 사용과 집행을 감독·감시해야 할 입주자대표들이 관리비를 유용하는 일도 적지 않다.

경기도의 M아파트에선 입주자대표들이 선물비, 유흥비, 사우나비 등으로 관리비를 부당 전용한 일로 입주자대표 출신끼리 형사재판이 벌어졌다. "전직 동대표들이 회식비로 98만원, 선물비로 66만원, 사우나·노래방·야유회·경조사 비용으로 200만원 등 관리비 600만원가량을 유용했다"고 폭로한 전직 입주자대표 옥모(42)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2월 말 2심에서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 사용 내역을 보면 실제 그 같은 지출이 있었던 사실이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 강남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동대표를 했던 강모씨는 본지에 "입주자대표들이 술 마시고 회식을 하는 데 관리비를 쓰길래 항의했더니 '이런 맛이 없으면 우리가 왜 이걸 하느냐'고 도리어 큰소리를 치더라"고 제보해 왔다.

서울시에 접수되는 민원 가운데는 "입주자대표들이 쓸데없는 회의 명목을 만들어서 회의비를 타간다"는 내용이 적지 않다고 한다. 경기 광명의 아파트 주민 신모(43)씨는 "아파트 선관위는 동대표 선거가 있을 때만 활동하는데도 운영 경비로 매달 40만원씩 연간 480만원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관리비 집행을 제대로 감사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2011년 감사원 감사 결과 서울시 1258개 아파트 단지 중 매년 외부 회계 감사를 실시한 단지는 70곳(5.6%)에 불과했고, 3년간 한 번도 감사를 안 한 단지가 56.3%(709곳)에 달했다.

 

 

●검버섯·주름… 노화의 흔적을 지워라
헬스로 뱃살 빼고 보톡스 시술에 여성 전유물 스파프로그램도 예사
자기관리 투철하다는 이미지 심어

●화장품·옷… 젊은 감성이 좋다
향 짙은 로션 대신 아내 에센스 쓰고 넉넉한 품 '아빠 양복' 벗고 슬림하게
가방도 태블릿PC 넣기 편한 백팩으로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인 40대 후반 김 상무는 나이보다 들어 보이는 외모 때문에 고민이다. 그는 "자칫 부사장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말에 위기감이 느껴졌다"며 "동안 컨설팅을 받고 컨설팅 받은 대로 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고백했다.

김 상무는 골프가 없는 주말에 짬을 내 정기적으로 피부과에 다닌다. 처음에는 검버섯과 점을 빼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피부과에서 피부관리까지 권해 이제는 시간 날 때마다 미백 관리도 받는다. 그는 "골프를 치면서 햇빛을 받으면 도로 피부 상태가 나빠질 수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의 박 상무는 찡그리면 나타나는 미간 주름이 신경 쓰여 몇 년 전 보톡스 시술을 받았다. 그는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게 부담스럽던 터에 아내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따라가 몇 차례 시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업 임원들끼리 모이는 자리에서도 피부 관리나 피부과 소개는 주요 화제 중 하나다. 젊어 보이는 것은 자기 관리에 투철하다는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으니 시간과 돈을 투자해 1년 더 임원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이들에게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서울 명동의 피부과 '아름다운 나라'에 따르면 최근 1~2년 사이 40~50대 남성의 내원객 수가 30% 이상 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40~50대 남성이 피부과를 찾으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루밍족(패션ㆍ뷰티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 열풍의 영향으로 피부과에서 중년 남성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 됐다. 이곳 류지호 원장은 "요즘 50대는 예전의 50대와 다르게 검버섯이나 점 등 하나둘씩 생기는 노화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지우고 대처한다"며 "특정 시술뿐 아니라 피부 관리를 위해 주말마다 피부과를 찾는 기업 임원이 많다"고 전했다.

여성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스파 프로그램에도 중년 남성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서울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국인삼공사의 정관장 '스파G'는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 더 입소문이 나 있는데 찾아오는 한국 남성 중 60% 이상이 50대로 추산된다. 특히 저녁시간대에는 고객의 30%가 50대 중년이고 불면증과 두피 관리 프로그램은 50대 중년 남성 전용 프로그램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이곳 관계자는 "제일 비싼 프로그램이 1회 50만원으로 비용이 만만찮지만 건강과 정력의 이미지가 있는 홍삼테라피의 특성에 힘입어 여성보다 남성의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향이 짙은 애프터셰이브와 로션으로 특유의 '아저씨 향취'를 풍기던 중년 남성들은 기능성 화장품으로 눈을 돌려 집에서도 주름 관리에 적극적이다. 50대 초반의 한 남성 임원은 "얼마 전까지 아내가 쓰는 아이크림ㆍ에센스를 조금씩 같이 쓰다 본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남성 전용 기능성 화장품을 구입했다"고 귀띔했다.

동안을 꿈꾸는 중장년층을 겨냥해 남성 전문 스킨케어 브랜드인 랩 시리즈는 40~50대 중장년층 전용 제품을 내놓았다. 2010년 처음으로 선보인 맥스 엘에스(MAX LS) 라인은 세포재생 기술을 활용한 프리미엄 안티에이징 라인으로 눈가 주름을 잡아주는 '인스턴트 아이리프트' '오버나이트 리뉴얼 세럼' 등 여섯 가지 고기능성 제품으로 구성돼 있다. 랩시리즈 측은 지난해 11월 출시한 '맥스 엘에스 데일리 리뉴잉 클렌저'와 '맥스 엘에스 스킨 리차징 워터로션'은 초도 물량이 출시되자마자 매진되는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한 남성 웰빙족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여기에다 젊음을 추가한 베이비 페이스족에 대한 욕구가 높다. 이를 위해서는 겉에 바르는 화장품도 중요하지만 건강기능식품으로 속을 다스려야 '회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소셜쇼핑의 판매 동향에서도 40~50대의 건강 챙기기 열풍이 확인된다. 한 소셜쇼핑업체 관계자는 "소셜쇼핑의 경우 20~30대가 주도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40~50대 이용이 늘고 있다"며 "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카테고리는 식품, 특히 건강기능식품이 주류를 이룬다"고 말했다. 쿠팡ㆍ티몬ㆍ위메프 등 주요 소셜쇼핑업체의 식품 카테고리에는 20~30대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홍삼, 포도즙, 흑마늘진액, 노안용 비타민, 오메가3 등이 즐비해 구매력을 갖춘 40~50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생존을 위한 동안'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머리ㆍ피부ㆍ몸매를 동안족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끝날 게 아니다. 여기에 '아저씨 스타일' 맵시를 그대로 가져가면 바로 NG.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년 남성들은 격식을 갖췄다는 느낌을 주는 수트나 재킷을 입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중년 정장은 실제 어깨보다 한 뼘은 더 넓은 사이즈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LG패션에 따르면 남성복 마에스트로는 슬림한 옷에 대한 중년층의 요구가 높아지는 니즈에 발 맞춰 제품 생산비중을 조절하고 있다. 마에스트로는 슬림 라인에 해당하는 7ㆍ8드롭 제품을 2007년 전체 재킷의 5% 정도만 생산했지만 6년 만인 올 봄ㆍ여름 시즌에는 해당 사이즈 제품이 전체의 40%까지 늘어났다. '드롭'은 가슴둘레에서 허리둘레를 뺀 치수를 뜻하는데 과거 남성복 표준으로 삼았던 6인치 드롭 사이즈는 넉넉한 품의 '아빠 양복'을 떠올리면 된다. 몸매를 가리기에 바빴던 중년 남성들이 자신에 몸에 맞춘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눈에 띄게 생산 추세가 바뀌는 셈이다.

정장 바지 역시 최근에는 주름 없이 몸매가 드러나는 노턱(no-tuck) 팬츠가 인기인데 해당 제품의 생산량은 올해 2007년에 비해 50% 이상 증가했다.

정장이 슬림해지면서 몸과 옷 사이에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별도로 가방을 들고 다니는 남성도 늘고 있다. 특히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 PC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2011년부터 백팩과 클러치백을 든 남성이 자주 눈에 띈다. LG패션 액세서리 부문장 정승기 상무는 "과거 정장 뒷주머니에 넣던 지갑의 수요를 클러치백이나 백팩 등의 아이템이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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